확실히 야구는 양 팀의 심리싸움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때문에 시즌 전 준비하는 기본적인 전력과 각종 수비 포메이션 역시 상대에게 얼마나 압박을 가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따지고 보면 팀의 객관적인 전력 자체가 상대팀에 주는 압박의 가장 큰 요소다.
잘 알다시피 LG와 두산은 잠실을 함께 쓰는 한지붕 두 가족이다. 자연스럽게 '잠실 라이벌전'이 공고하게 형성됐다.
변수가 많은 야구. 그러나 두 팀의 맞대결에서 가장 변수는 '라이벌전'이라는 압박감이다. 26일 잠실에서 열린 두 팀의 맞대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의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이 무너진 두산은 안규영을 깜짝 선발로 내세웠다. 올해 1군에서 선발경험이 없는 유망주. LG는 전반기 17경기에 나서, 4승4패 평균 자책점 3.72를 기록한 신정락. 올해 LG의 선발 한축을 담당하는 신정락은 업그레이드됐다. 물론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기복이 심한 투구를 하는 약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선발맞대결은 LG가 좀 더 유리했다. 게다가 LG는 KIA에 기분좋은 2승1패, 위닝시리즈를 거둔 상태. 확실한 마무리 봉중근과 안정감있는 중간계투진도 있었다. 반면 두산은 선발 로테이션의 붕괴와 함께 계투진의 약점이 넥센전에서 드러났다.
초반은 완벽한 LG의 페이스였다. 두산 김진욱 감독은 경기 전 "현재 LG의 가장 무서운 점은 상승세의 분위기"라고 했다. 그만큼 선수들은 자신감이 있었다. 당연히 생초보 선발 안규영은 LG 타선에 '좋은 먹잇감'이었다.
안규영은 실투가 너무 많았다. 1회 모든 공이 높거나 가운데로 들어갔다. 아니면 볼이었다. 1회 박용택의 홈런, 이병규(7)가 연속 적시타를 쳤다. 안규영은 9번 타자 윤요섭의 삼진을 잡는 공을 던지기 전까지 계속 공이 높았다. 결국 2회에도 LG는 2득점.
3회초 이병규(7)에게 볼넷, 김용의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하자, 더 이상 두산 벤치는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안규영은 2⅓이닝 7피안타, 5실점을 했다. 씩씩하게 던졌지만, 많은 실투를 좋은 분위기의 LG 타선이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3회초까지 5-0 LG의 일방적인 리드.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하지만 리그 최고의 팀타율을 유지하고 있는 두산 타선이 가만있지 않았다. 2회까지 호투하던 신정락에게 이종욱 정수빈 오재원이 연속 안타, 무사 만루상황을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라이벌전 변수가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2만7000명의 만원관중. 강한 압박감을 느낀 신정락은 갑자기 흔들렸다. 김현수에게 몸에 맞는 볼, 홍성흔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2실점. 가장 좋지 않은 흐름이었다. 결국 이원석이 중전 적시타를 터뜨리자 LG 벤치는 신정락을 강판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교체된 LG 유원상은 손시헌을 병살타 처리했지만, 기세가 오른 두산은 박세혁의 2루타와 김재호의 좌전 적시타로 결국 6-5로 전세를 뒤집었다.
하지만 일찍 선발이 무너진 잠실 라이벌전의 혼돈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4회초 리드를 잡은 두산은 김상현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선두타자 오지환은 우익수 플라이. 그러나 이진영을 볼넷으로 내준 1사 1루 상황에서 오심에 의한 판정번복 상황이 나왔다. 정상훈의 우익수 플라이 타구를 정수빈이 한차례 놓쳤다 다시 잡았다. 박종철 1루심은 아웃을 선언, 1루 주자 이진영까지 객사했다. LG 김기태 감독은 선수단을 철수시키며 강력히 항의, 다시 판정이 번복됐다. 1사 1, 2루에서 다시 시작. 두산 김상현에게는 악재였다. 판정번복으로 인한 4분간의 브레이크 타임. 그리고 심리적인 흔들림이 있었다. LG 타선은 다시 폭발했다. 이병규(9)의 적시타와 김용의 손주인의 연속 적시타로 다시 9-6으로 전세를 다시 뒤집었다.
하지만 두산은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오재원의 2루타와 김현수의 적시타까지는 정상적인 수순. 그런데 2사 1, 3루 상황에서 손시헌의 평범한 유격수 앞 땅볼을 LG 오지환이 뒤로 빠뜨렸다. 경기흐름으로 볼 때 너무나 뼈아픈 실책이었다. 결국 최준석의 좌전 적시타로 다시 9-9,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선발의 우위가 없어진 점, 두 차례의 리드를 내준 LG의 상황을 볼 때 확실히 심리적 우위를 점한 것은 두산이었다.
6회 두산은 균형을 다시 깨뜨렸다. 홍성흔의 2루타와 이원석의 우전안타로 만든 무사 1, 3루 상황에서 이원석의 우중간 2루타가 터졌다. 행운이 두산쪽으로 향했다. 우익수 이진영이 처리할 수 있는 공이었지만, 타구가 순간적으로 조명에 들어갔다. 결국 이진영은 타구를 뒤로 빠뜨렸다. 여기에 김재호의 강습 내야안타, 이종욱의 희생플라이가 나왔다. 12-9로 역전.
하지만 여전히 LG가 역전할 수 있는 흐름은 살아있었다. 기세가 살아있는 LG의 타선과 두산의 불안한 중간계투진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그런데 여기에서 LG는 뼈아픈 실책이 나왔다. 2사 1루 상황에서 김재호는 투수 견제에 걸렸다. 하지만 악송구, 결국 김재호는 3루까지 진루했다. 정수빈의 깨끗한 좌전 적시타. 이 점수는 심리적으로 LG에 주는 타격이 너무 커 보였다. LG는 어쩔 수 없이 정찬헌을 투입했다. 결국 7회 김현수의 2루타와 이원석의 투런홈런까지 터졌다. 15-9,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졌다.
두산은 8회 필승계투조 오현택을 투입했다. 확실히 경기를 매듭짓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LG의 상승세는 끝까지 살아있었다. 선두타자 손주인이 몸에 맞는 볼로 출루, 이어진 박용택의 투런 홈런. 오지환의 볼넷과 이진영의 중전안타로 1사 1, 3루. LG가 다시 흐름을 가져왔다. 정성훈은 유격수 내야안타를 쳤다. 완벽히 좌익수 앞으로 빠지는 공이었지만, 두산 유격수 김재호가 절묘한 수비를 했다. 아웃카운트를 늘리진 못했지만, 1루 주자를 2루에 멈춰세웠다. 또 다른 효과도 있었다. 기세를 다시 가져온 LG의 상승세에 제동을 거는 보이지 않는 호수비. 두산은 정재훈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그리고 이병규(9)는 뼈아픈 병살타를 치며 흐름이 끊어졌다.
결국 두산은 15대12로 승리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잠실 드라마. 하지만 강력한 라이벌전 변수 속에서 두산은 차근차근 심리적 우위를 확보했다. LG 입장에서는 승부처에서 나온 2개의 실책이 너무나 뼈아팠다. 잠실=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