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야구인생의 또 다른 감동이었죠."
7년 만의 재회였다. 지난 24일 광주구장에서 적으로 만난 KIA 최희섭과 한화 박찬호의 사이에는 7년의 세월이 놓여져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30대 초반의 베테랑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그 사이 메이저리그 아시아출신 투수 최다승(124승) 기록을 수립한 뒤 일본을 거쳐 고향팀 한화로 금의환향했다. 20대 중반의 촉망받던 메이저리거 최희섭도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팀 KIA의 중심타자로 입지를 굳혔다. 세월이 변하면서 서로의 입장과 위치는 이처럼 각기 달라졌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심어준 선배에 대한 최희섭의 존경심만큼은 7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25일 광주구장에서 만난 최희섭은 전날 박찬호와의 대결을 회상하며 '감동' '영광' '깨달음'과 같은 단어를 썼다. 그만큼 박찬호와의 대결이 각별했던 것이다. 최희섭은 "미국에 있을 때 수많은 대투수들을 만났지만, 박찬호 선배와 경기를 할 때는 무언가 특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7년 전하고 똑같이 긴장되고 설레더라"고 말했다.
최희섭은 LA다저스 시절이던 2005년 9월12일 홈구장인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당시 샌디에고 소속이던 박찬호와 메이저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대결을 펼쳤다. 당시 성적은 1루 땅볼과 몸 맞는 볼로 2타석 1타수 무안타. 이후 7년 만에 다시 대결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최희섭은 이번 대결에서는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무엇이 최희섭의 마음을 그렇게 설레게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 최희섭에게 박찬호는 한 마디로 영웅이었다. 최희섭은 "나 뿐만이 아니라 또래나 후배들에게 '박찬호'라는 사람은 메이저리그의 꿈을 심어준 영웅이었다. 우리 팀에 어린 후배들이 많은데, 그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박찬호 선배의 활약을 보고 컸다. 그런데 이렇게 대결 상대로 만나니 그 자체로 얼마나 영광인가"라고 설명했다.
최희섭은 이번 대결에서 예전에는 몰랐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경기에 임하는 박찬호의 눈빛과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대한 엄청난 집중력, 그리고 근본적으로 한국행을 택한 그 용기가 최희섭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100승 이상은 타자로 치면 300홈런쯤 친 것과 비슷한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다. 그런 커리어를 쌓은 선배가 마지막 힘을 고국에서 쓴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결단이다. 만약 나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며 박찬호의 한국행 자체가 위대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 하나하나에 아쉬워하고, 전력을 다하려는 모습이 경기를 통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면서 반성을 하게 됐다. 나는 지금껏 매 타석이 아깝다거나 하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찬호형을 보고 한 타석 한 타석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고 집중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박찬호와의 대결을 통해 최희섭의 야구관은 또 새롭게 달라지고 있었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