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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나의 힘!'
경험만큼 큰 가르침을 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직접 혹은 간접적이라도 많이 쌓아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나쁜 경험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작용, 나중에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염 감독은 "선수 시절 노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것 같다. 한 경기 한 경기의 소중함도 잘 몰랐다. 그러니 야구를 잘할 리가 없었다"고 스스로를 탓했다. 91년 태평양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 2000년까지 10시즌동안 선수로 뛰면서 유일하게 규정타석을 채웠던 94년 2할1푼2리에 그칠 정도였으니, 그라운드보다는 벤치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이후 현대(현 넥센), LG 등에서 스카우트와 운영팀장 등을 거치며 선수 시기만큼의 프런트 생활을 지냈다. 또 두 팀에서 수비, 주루, 작전코치 등을 역임했다. 프런트나 코치나 선수들을 서포트하는 일이니 좀처럼 빛은 안 나면서도, 제대로 못할 경우 티가 확실히 나는 고된 일.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이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넥센을 이끄는 힘으로 올곶이 작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염 감독이 지난 4일 9개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30승 고지에 올라섰으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오히려 연승과 연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날의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강조하는 이면에는 운영팀장을 하던 2011년 LG 시절의 경험이 가장 컸다고 한다.
당시 LG는 30승을 가장 먼저 찍으며 2002년 이후 9년만에 '가을야구'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역대로 30승 선착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마치 귀신에 홀린듯 LG는 34승까지 찍은 후 5연패에 빠졌고 이후에도 연패를 밥먹듯 하다가 결국 6위로 시즌을 끝냈다. 너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셈이었다.
염 감독은 "결국 1경기 때문에 틀어졌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해 6월10~12일 군산 KIA전에서 초반 2연승을 거둔 후 마지막 3차전에서 코칭스태프와 프런트 사이에 약간의 이견이 생겼다. 어차피 원정 2연승을 거둔데다, 이날 KIA 선발이 에이스 윤석민이니 휴식 기간 없이 다소 무리했던 주키치를 쉬게 하고 다른 투수를 기용하는 '선택과 집중'이냐, 아니면 그대로 밀어붙이느냐를 놓고 갈등이 생겼던 것. 결국 주키치를 그대로 밀어붙였다가 1대8로 패했고, 이후 5연패에 이은 4연패를 연속 당하며 그동안 벌어놨던 승수를 모두 까먹고 말았다.
염 감독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을 통해 휴식의 필요성, 시즌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1경기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며 "30승 선착 등 기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현대에서 운영팀 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9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인 끝에 우승을 거뒀을 때도 염 감독에겐 기쁨과 서글픔이 교차했던 순간이다. 염 감독은 "장대비가 쏟아지던 당시 잠실구장에서 택시가 안 잡혀 잠실 롯데호텔까지 뛰어가서 우승 축하연을 준비했다"며 "프런트였기에 그라운드에서 우승의 감격을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내가 뭐하고 있는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야구를 좀 더 잘했더라면, 선수 생활을 계속 했을 수도 아니면 코치를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더욱 서글펐다는 것이다.
덧붙여 염 감독은 "내가 좀 놀아봤기 때문에 선수들이 어떻게 꾀를 부리고 싶은지를 뻔히 알고 있다"며 "이를 우리 선수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선수로서의 '롤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 자신처럼 야구를 하면 은퇴를 해서도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는 얘기도 됐다.
어쨌든 현직 사령탑 가운데 삼성 구단 사장을 역임했던 한화 김응용 감독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프런트 생활을 했던 염 감독의 다양한 경험은 현재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를 쏙쏙 뽑아먹으며 넥센 선수들이 훌쩍 커가고 있다.
목동=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