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대표팀, 이승엽을 언제 놓아줘야 하는가

기사입력 | 2013-03-05 09:56:14

이승엽은 4일 호주전서 안타 3개를 뽑아내며 대표팀 승리를 이끈 뒤 "마지막 태극마크라서 이번 대회에 꼭 오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2회 1타점 2루타를 날린 뒤 1루를 돌고 있는 이승엽. 타이중(대만)=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의 이승엽이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은 지난 99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때다. 이후 이승엽은 이번 WBC까지 총 8차례의 국제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앞장섰다. 국가대표 '이승엽'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은 역시 홈런을 비롯한 결정적인 장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 에이스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승 2루타를 뽑아냈고, 2006년 WBC 1라운드에서는 일본 도쿄돔에서 역전 투런포를 작렬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대회 내내 부진을 겪다 일본과의 준결승, 쿠바와의 결승에서 각각 결승홈런을 쏘아올리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승엽은 4일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털구장에서 열린 호주와의 1라운드 B조 경기에서 초반 공격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2루타 2개를 날리며 대표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1회 1사 1루서 우중간 2루타로 찬스를 만들었고, 4회에는 1사 2루서 우익선상에 총알같이 떨어지는 2루타로 쐐기 타점을 올렸다. 연습경기와 네덜란드전에서 침묵했던 대표팀 타선은 이승엽의 결정적인 장타로 분위기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위기의 한국 대표팀을 구한 것은 이번에도 이승엽이었다. 팬들은 반응은 뜨거웠다. 이날 경기 후 네티즌들은 '역시 이승엽이다', '세월이 흘러도 존재감은 여전하다' 등 온갖 찬사를 보냈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다소 약해졌던 이승엽을 향한 팬들의 신뢰감이 더욱 깊어진 경기였다.

그런데 이승엽은 이제 태극마크를 놓으려 하고 있다. 이승엽은 이날 경기를 마친 뒤 공식 인터뷰에서 한 대만 기자의 질문에 "나라가 부르면 선수로서 나가는게 당연하다. 나로서는 마지막 태극마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오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대표팀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오게 됐다"고 밝혔다. 이 대만 기자는 경기와 상관없는 '베테랑' 이승엽의 대회 참가 이유를 물었던 것이다.

이승엽은 1976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이 됐다. 이번 대표팀에서는 같은 삼성 소속의 진갑용에 이어 두 번째 고참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대표팀 23명중 이승엽보다 어린 선수는 4명 뿐이었는데, 지금은 서열 2위의 고참이다.

이승엽이 대표팀 은퇴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제2회 WBC 불참을 결정할 때도 "지금의 상태로는 대표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해 불참을 결정하게 됐다. 이제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직전 시즌 요미우리에서 타율 2할4푼, 8홈런에 그쳤던 이승엽은 당시 WBC 출전을 자신할 수 없었다. 팀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까닭으로 떳떳하게 태극마크를 달 수는 없었던 터다. 4년의 흐른 지금 이승엽의 가슴에는 여전히 태극마크가 달려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회와 류중일 감독은 지난해말 대표팀 구성 때 이승엽의 이름을 가장 먼저 올렸다고 한다.

이승엽이 대표팀을 떠날 적기는 언제일까. 이번 대표팀 은퇴 발언은 2009년과는 다르게 들린다. 무엇보다 나이 때문이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내년이면 서른아홉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야구가 이승엽을 필요로 하고 있음은 이날 호주전에서 또 드러났다. 향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승엽이 태극마크를 손에 들고 고민하는 날이 또 올 지도 모를 일이다.
타이중(대만)=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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