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슈]얼음판 녹인 이상화X고다이라의 우정, 이것이 올림픽이다
기사입력 2018-02-19 06:06:50 | 최종수정 2018-02-19 06:25:23
|
피말리는 얼음판, 혼신의 레이스를 모두 마친 후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하는 한일 스케이터의 우정은 감동이었다.
이상화는 18일 오후 8시56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펼쳐진 평창올림픽 여자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37초33(100m 10초20)의 기록으로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32·일본)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2014년 소치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안방' 평창올림픽에서 빛나는 은메달로 아시아 선수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메달 위업을 썼다. 고다이라는 36초94(100m 10초26)의 올림픽 기록을 작성하며 일본 여자선수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치 양보없는 치열한 명승부 직후 두 선수의 10년 우정은 빛났다. 지난 2시즌간 세상의 모든 레이스에서 냉정한 라이벌로 맞붙은 이들은 올림픽 기자회견 현장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향한 특별한 마음을 열어보였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라이벌 스케이터는 실은 평창올림픽의 한 방향을 향해 한마음으로 함께 달려온 오랜 친구였다.
|
필생의 라이벌로 알려진 한일 스케이터들의 우정과 서로를 향한 마음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날 7000여 안방 관중의 뜨거운 응원속에 혼신의 스케이팅을 마친 이상화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눈물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제가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500m 부담감을 다 내려놓을 수 있어서 저에 대한 선물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올림픽을 바라보면서 저와 이 선수(고다이라 나오) 둘이 달려왔다. 이제 정말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다"고 답했다.
|
지난 4년간 준비해온 37초33의 레이스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리는 '올림픽 3연속 메달리스트'이상화를 향해 고다이라가 다가와 위로와 존경의 말을 전했다. 태극기, 일장기를 어깨에 나란히 멘 채 링크를 도는 장면은 찡했다. 기자회견에서 고다이라는 "저는 상화선수에게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말해줬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상화선수에게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부담감을 이기고 꾸준한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상화를 계속 우러러 볼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고 전했다. 이상화는 "선수랑 오래전부터 함께했다. 나오는 소치올림픽 때도 그렇고 내가 어떤 메달을 따든 간에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나오가 500m뿐 아니라 1500, 1000m를 모두 탄 부분도 리스펙트한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얼음판에서 지난 2년간 한치 양보없는 철의 레이스를 펼친 세계 정상의 한일 여성 스케이터들이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하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올림픽은 이런 것이다.
지난 10년의 세월, 레이스에 가려져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들의 깊은 우정이 공개됐다. 서로의 장단점을 묻자 고다이라가 먼저 이상화와의 추억담을 쏟아냈다. "상화는 항상 친절하다. 월드컵에서 내가 1등한 적이 있다. 우승 직후 네덜란드에 가야 했는데 공항으로 가는 택시비를 상화가 대신 내줬다. 제가 이겨서 기분이 안좋을 수 있는데 공항 가는 택시도 잡아주고 택시비까지 내줘서 기분이 좋았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상화는 스케이터로서도 대단히 훌륭한 선수다. 나는 상화를 제 친구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이상화 차례였다. "나오가 2007년에 한국에 놀러온 적이 있다. 절친했고 한국에 초대할 만큼 사이가 좋았다.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나오와 시합할 때 단한번도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 제가 1등하고, 나오가 1등하고…"라며 웃었다. "무엇보다 나오는 500, 1000, 1500m를 모두 타는 선수다. 내가 1000m를 타는 이유는 500m를 타기 위해서인데 나오는 1500m까지 탔다. 그 모든 종목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리스펙트 할 수 있다. 레이스 뒷바퀴(후반)를 어떻게 저렇게 잘 버틸까. 자기 관리를 너무 잘한다"며 고다이라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늘 긴장을 놓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게 해준 라이벌, 고다이라의 존재에 감사를 표했다. "정상에 함께 있으면 서로 함께 느는 것은 당연하다. 라이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 서로 기록이 빨라졌다. 그래서 너무 좋다."
이상화는 4년 전 단둘이 나눈 이야기도 공개했다. 이상화가 소치올림픽 500m에서 2연패에 성공하고, 고다이라는 5위를 기록했던 무렵이다. "나오와 소치올림픽 직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오가 '평창에서는 네가 1등하고 내가 2등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1등은 네가 하고 내가 2등할게' 농담했는데 정말 말처럼 2등을 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일본을 넘나든 이들의 따뜻한 우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평소에도 한국 일본을 오가는 택배 선물을 보내며 서로를 살뜰히 챙겨왔다. 이상화는 "저희는 추억이 많다. 누가 잘탔든 못탔든 격려를 서로 많이 해줬다. 나오는 내게 남다른 스케이터"라면서 "나오는 내가 일본에 가면 좋아하는 선물을 많이 해준다. 일본 식품들을 좋아하는데 나오가 택배로 자주 보내준다. 나는 한국 식품을 일본에 보내준다. 그런 추억이 많다"고 했다.
세기의 라이벌에게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경쟁해보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고다이라가 한국어로 "몰라요"라고 즉답했다. '돌발' 한국말 답변에 현장에선 웃음이 터졌다. 이상화가 대신 답했다. "평창올림픽 끝나고 베이징까지 갈 거냐는 이야기를 고다이라와 나눈 적이 있다. '나오는 제가 하면 하겠다'고 했다. 그땐 정말 재밌게 넘겼는데 질문이 나왔다"며 웃었다. "일단 올림픽 끝났으니 제대로 쉬고 싶다"는 말에 고다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
이상화는 아름다운 레이스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9일 새벽 자신의 SNS에 이렇게 썼다. '나는 너무나 수고했고 길고 긴 여정도 잘 참아냈다! 2등도 만족하고 아직도 상위권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수고하셨습니다!응원과 함성 진심으로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시태그를 달았다. ' #2018평창동계올림픽 #한일전은감동이었다 #나는나였다.'
강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