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①] 배우A "필리핀 성폭행, 아내가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인터뷰)

    기사입력 2018-02-19 10:29:45 | 최종수정 2018-02-20 17:30:35


    "수 많은 성범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을 아십니까? 그들은 한결같이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라고 주장합니다"

    [스포츠조선 박현택 기자] '양형기준제도'

    범죄의 경중과 범인의 전과에 따라 미리 정한 형의 범위에서 형을 선고하는 제도를 말하며 국내에서는 2007년 대법원 양형위원회 설립을 시작으로 도입됐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기준제 도입 후 10년간, 살인과 성범죄 등 38개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이 설정됐고, 최근 5년간 재판에서는 평균 89.7%가 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판사들이 90%에 가까운 비율로 양형기준이 권고하는 범위 내에서 판결을 내린 셈이다.

    양형기준제의 운용 목적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부합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양형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판사들의 양형기준에 대한 준수율이 높더라도, 그 양형기준 자체에 대해 국민의 법 감정 또는 공감대가 '부당하다'에 맞춰져 있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1일, 출범 10주년을 맞아 '양형위원회 10년의 성과와 주요과제' 학술대회를 열었다.

    초기 양형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손철우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이날 양형에 대한 국민 법감정이 괴리됐다는 일각의 비판에 부정적인 견해를 전했다. 그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들이 평균 78.8%로 높은 양형기준 준수율을 기록했지만, 그중 양형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배심원들의 경우 폭력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 군에서 양형기준의 권고 형량 범위보다 더 낮은 양형 의견을 제시하는 '하한이탈'을 보였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즉 5명 중 4명의 국민참여 재판 배심원들이 '양형기준 내의' 형벌을 정했고, 기준을 이탈한 배심원의 경우 오히려 더 낮은 형벌을 정했다는 의미.

    손 판사는 이날 "특히 국민의 공분을 자주 유발하는 성범죄의 경우에도 배심원들이 양형기준보다 더 낮은 양형 의견을 내놓는 비율이 92.1%에 달한다는 점에서, 양형위가 그동안 설정한 양형기준이 양형에 관한 일반 국민의 건전한 상식이나 법감정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성범죄자 양형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법감정은 과연 손 판사의 분석대로 일까.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무른 양형기준' 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란에 성범죄자 조두순에 대한 출소반대 청원에는 총 60만 명이 참여했다. 국민의 공분을 산 '조두순 사건' 외에도 성범죄자 처벌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은 '관대하다'는 여론이 드세다.

    온라인 설문조사 시스템 두잇서베이가 2016년 5월 4일부터 5월 11일까지 전국 10~99세 남녀 427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9%가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도가) 약한 편'이라고 답했고, '강한 편'이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4.4%에 불과했다. 또한, 대검찰청이 2015 발표한 범죄분석 현황을 보면 (2015년 기준) 최근 10년간 성범죄 발생 건수는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도 손 판사의 분석을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여기 한 배우가 있다.

    그의 아내는 지난해 1월, 필리핀 휴가 중 강간미수라는 성폭력 범죄를 당했다. 가해자는 남편의 18년, 아내의 10년 지인. 판결문에 기록된 사건 당시의 세세한 정황은 차마 기사에 옮길 수 없다.

    가해자는 1년 후인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선고 다음 날, 사건은 [단독] 유명배우 A 아내 B 씨, 외국서 성폭행 피해…라는 제목과 함께 한 언론사에 의해 보도되었고, 당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는 '필리핀 성폭행', '필리핀 성폭행 배우'였다.

    기사에는 피해자인 A 씨와 B 씨의 신원을 손쉽게 특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담겨 부부의 2차 피해가 시작됐다.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 버젓이 실명이 올랐고, 이를 지우려는 부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명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자,

    보름이 지난 후, A씨가 스포츠조선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는 종신형, 가해자는 집행유예"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3차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대한민국 사법부와 언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만남을 자청했다.

    먼저 전체 사건의 정황을 간략히 말씀 주실 수 있을까요.

    - 가해자는 저와 18년 지인 사이입니다.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죠. 제가 아내와 10년 전쯤 연애를 시작했으니, 아내 역시 여자친구이던 시절부터 그 지인(가해자)은 물론 그 부인과도 친분이 있었습니다. 네 사람이 자주 만나기도 했고,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도 했습니다.

    제게 다른 지인들로 구성된 작은 모임이 있는데, 그 중 몇 명이 필리핀의 작은 골프장의 회원이어서 매년 겨울마다 7박, 8박 정도로 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마침 그해(2016년)에 A씨가 필리핀 현지에서 음식점 사업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그가 마련해 둔 집 (2층집) 에 아내와 딸을 함께 데리고 가서, 그의 집에 머물며 딸 공부(단기)도 시키고, 아내와 저도 휴가를 즐기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내의 친구도 함께 갔고요. 앞서 보도되기로는 어린 딸이 유학 중이고, 아내와 제가 기러기 부부인 뉘앙스로 쓰였지만, 이는 사실과 조금 다름을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필리핀으로 가서 생활하던 중, 아내는 저와 지인(가해자)의 아내가 외출로 집을 비운 사이, 가해자로부터 변(강간 미수, 2017년 1월)을 당했습니다.

    < 정황 설명 생략 >

    제가 집을 비웠을 때 (변을 당하기 전) 가해자가 아내의 친구까지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모든 시아버지가 사실 며느리를 여자로 보며 성관계하고 싶어하지만 참는 것일 뿐' 같은 말이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고 후, 가해자는 황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저는 일단 그 집에서 짐을 빼 아내와 딸을 근처 리조트로 데리고 왔습니다. 가해자가 한국으로 갔으니 한국으로 가는 게 두렵다는 아내의 말에 일단 현지 리조트로 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가해자가 다시 필리핀으로 와서 '죽을죄를 졌다'며 문자가 왔습니다. 리조트 앞으로 찾아왔다고도 연락이 왔고요. 그런데 도저히 이성적으로 그를 만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흥분하여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엄습해 왔습니다. 결국, 만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경찰서에 신고했고, 1년이 지난 얼마 전 (2월 1일) 가해자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제 아내는 약 1년 전, 성범죄를 당해 1차 피해를 받았습니다. 이후 지옥과 같은 1년을 보냈고, 가해자는 검찰 구형량이 징역 3년이었음에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2월 1일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선고 공판 다음날 새벽, 한 언론사가 선고 결과를 토대로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단독] 유명배우 A 아내 B 씨, 외국서 성폭행 피해…였고, 내용에는 피해자인 제 아내 'B'와 그 남편인 저, 'A'가 누구인지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심각한 수준의 2차 피해를 보았습니다.

    같은 날 가해자는 판정에 불복, 항소하였고, 알아본 바로는 2심에서는 1년 6월의 실형보다도 낮은 형량인 집행유예로 감경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와 언론은 '성범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는 기관' 입니까. 성범죄에 관대한 대한민국, 비인간적인 언론 보도에 대해 3차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목소리를 내고자 언론사 인터뷰를 자청하게 되었습니다.

    기사에 어떻게 담겼나요.

    -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누구든지 (성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출판물에 게재하거나 방송 매체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폭력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신원이 공개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특정될 만한 어떠한 정보도 기사에 담겨서는 안 됨을 의미합니다. 아마 기사에서 우리 부부가 특정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진행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러한 인터뷰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관련 기사에는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고 오로지 피해자의 신원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저와 피해자이자 일반인에 가까운 제 아내에 관한 나이, 이력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표기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제 딸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는 일반인이라 '특정'되기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지 '박 모 씨'라고만 표기되어 있으며, 나이는 무려 10살가량 잘못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기사에 쓰인 제 아내와 저에 대한 설명 글은 그 전체 길이의 10%만으로도 우리가 누군지를 알 수 있음에도 몇 배나 더 자세한 설명을 넣은 것입니다. 기사에는 또한 '피해자 A 씨와 B 씨는 1일 선고 공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론사명]은 당시 상황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A 씨와 B 씨 측에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문구까지 포함돼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피해자의 피해자 신원을 그렇게까지 알리고 싶으셨습니까? '의도치 않게' 특정돼버린 상황이라고도 볼 수 없을 만큼 세세하며 지나치게 설명적이었기에 우리는 분노 이상의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분노 이상의 궁금증이란 무엇입니까.

    - 기사화의 배경과 목적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주변의 아는 기자분들에게도 문의했습니다. 단순 사실 보도가 목적이라면 피해자 신원을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기록할 이유와 필요가 전혀 없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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