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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군입대' 박유천, 미리 남긴 청룡 핸드프린팅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5-11-05 09:48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배우' 박유천에게 2014년은 특별했다. 영화 '해무'로 스크린 데뷔. 그리고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수상. 단숨에 충무로 샛별로 떠올랐다. 트로피를 품에 안고 상기된 표정으로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던 박유천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한국영화의 미래를 봤다.

1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전년도 수상자 자격으로 올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찾아야 하지만, 박유천은 지난 8월 말 입대해 현재 공익근무 중이다. 5일 핸드프린팅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영광의 순간을 손도장에 남기지 못하는 게 아쉬워, 입대 열흘 전인 8월 17일 박유천을 미리 만났다. 핸드프린팅을 하며 수상 순간을 돌아본 박유천은 "트로피가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돼야겠다"며 다부지게 말했다.

'해무'에서 순박한 뱃사나이로 변신한 박유천의 열연은 트로피의 주인이 되기에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청룡영화상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너무 놀랐어요. 카메라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수상 소감도 준비하지 못해서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시상식을 구경하러 간 거였어요. 연예인도 연예인을 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영화관에서 놓쳤던 작품은 뭐가 있나 살펴보는 재미도 있고요. 그런데 덜컥 상을 받으니 마음도 불편하고 어깨가 무거웠어요."

수상을 실감하지 못해 얼떨떨해하던 박유천과 달리 심성보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마치 자신의 일인 듯 환호하며 박유천을 축하했다. '해무' 촬영장의 막내로 박유천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느껴지는 장면이다. "지방 촬영이 많다 보니 배우와 스태프가 똘똘 뭉쳐서 지냈어요. 틈만 나면 술잔을 기울였고요. 두 분 감독님을 비롯해 '해무' 팀의 모든 배우, 스태프가 너무나 좋은 분들이라, 반년간 행복하게 지냈어요. 제가 복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해무'는 박유천에게 연기의 새로운 재미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기관실 안에서 액션신을 촬영하고 나면 말 한마디 못할 만큼 지치는데도, 짜릿한 희열과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를 테면 힘든 척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녹초가 된 상태에서 연기를 하니 훨씬 더 자연스럽고 살아있는 감정이 나오더라는 얘기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재밌어요. 힘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힘듦까지 즐겁게 느껴질 만큼 연기가 좋습니다."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은 아직 개봉 전인 '루시드 드림'이다. 작은 역할이지만 "함께 가자"는 설경구의 얘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출연했다. 설경구와 호흡하며 배운 것들이 많다. 단 한 장면을 위해 강원도까지 내려와서는 첫 테이크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낸 설경구의 철저한 준비성을 예로 들며 박유천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설경구 선배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에요. '제대한 뒤에 작품에서 진하게 한판 붙자'고 하셨는데, 구수한 영화, 진국 같은 영화로 꼭 만나고 싶어요. 미친 듯이 연습할 겁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뛰네요."

설경구로부터 깜짝 선물도 받았다. '배우 박유천'이라고 이름이 새겨진 디렉터스 체어. 무려 20여 년 전 제작된 귀한 의자다. "볼품 없지만 꼭 선물해 주고 싶었다"는 설경구의 메시지를 전하던 박유천은 감동으로 다시 벅차올랐다. "원래도 설경구 선배를 좋아했지만, 실제로 알게 되면서 더 좋아하게 됐어요. 제 롤모델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드라마 '쓰리 데이즈' 이후 한동안 쉬다가 다시 작품을 고른 것도 선배 때문이었죠. 선배가 출연한 '나의 독재자'를 본 뒤 연기가 너무나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하게 됐어요."

'나중에 설경구 같은 배우가 될 것 같다'고 하니, 박유천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꿈이다. 그래서 2년 뒤 박유천이 더욱 궁금해진다. "공익근무를 하며 대중의 시선 밖에서 지내다 보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길 테고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겠죠. 내가 나다운 삶을 살아야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대했을 때 더 갖춰진 사람이 돼 있었으면 좋겠어요."

30대를 맞이하는 두려움에 대해 묻자 "일이 잘 안 풀리면 동생(박유환)에게 용돈 받으면 돼요"라며 넉살 좋게 껄껄 웃는다. "실수는 많이 했지만 허투루 살지는 않았으니 30대에도 분명 제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을 거라 믿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suzak@sportschosun.com·사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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