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12)
기사입력 2000년 02월 08일 14시 19분
"내가 경솔했어."
소주잔을 든 오성호가 포장마차가 날아갈 듯 한숨을 쉬었다.
"흥분한 바람에 앞뒤 가리지 않고 은행으로 달려간 거야."
포장마차 안에는 팀원들이 모두 모여앉아 있었다. 옆에 앉은 차만석이 입맛을 다셨다.
"내 잘못도 있어. 씨발. 박대리 집에 돈이 갔다고 백경일한테 밀고만 안했더라도."
"아, 그만들 하시오."
김영만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죽은 자식 나이 세는 거요, 뭐요? 청승 맞게 시리."
"아니. 이 자식이."
눈을 부릅뜬 오성호가 당장이라도 술잔을 던질 듯한 자세로 팔을 들었다.
"그때 너라도 나를 말렸어야 했어. 이 자식아. 그런데 네놈은 더 앞장을 섰어."
"정말 한심하네."
혀를 찬 정현희가 사내들을 흘겨보았다.
"뭔가 해결방법이 나올까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도대체 이게 무슨 회의야?"
"너도 입닥쳐."
김영만이 이제는 정현희 쪽으로 돌아앉았을 때 서미영이 나섰다.
"김선배, 좀 조용히 해요. 왜 이쪽 저쪽에다 시비만 걸어요?"
"아니 이게 꼭."
눈을 부릅떴던 김영만이 반쯤 벌려졌던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서미영 앞에서는 쪽을 못쓴다. 소주잔을 한모금에 비운 오성호가 헛기침을 했다.
"보스는 혼자 책임을 지겠다지만 내가 나서겠어. 내가 너희들한테 시켰다고 할테니까 말을 맞추자구."
"제기, 백경일이 그 말을 믿을까?"
혼잣소리처럼 말을 뱉은 김영만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요. 오대리님."
"이러면 어떨까요?"하면서 이제까지 잠자코 앉아있던 최경태가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 이모부가 무역회사를 하는데 가끔 달러를 바꾸거든. 그래서 이모부 부탁을 받고 우리가 환전해 주었다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이모부 한테는 말을 해놓을 테니까."
"그것 괜찮은데"하고 김영만은 반색을 했지만 정현희가 머리를 저었다.
"박대리님 집으로 돈이 건너간 증거까지 갖고 있는 상황인데 뻔히 보이는 수작이야."
"수작이라니?"
이제는 최경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정현희, 너 말버릇 고쳐. 그리고 남의 말을 씹지만 말고 네 의견이나 내놓으란 말이다."
"내가 너한테 한 소리야?"
"아, 시끄러!"
마침내 오성호가 소리치고는 붉어진 얼굴로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씨발,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면 보스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우리도 행동 통일을 하기로 하자. 어때? 이의없지?"
"모두 보스를 따라간단 말인가요?"
서미영이 확인하듯 묻자 차만석이 대신 대답했다.
"그래, 이번 일은 조용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아. 내일 아침에 사장실에서 보스에 대한 추궁이 있을 예정이고 그 자리에서 결정이 날 거야."
"좋습니다. 난 보스하고 운명을 같이하겠습니다."
최경태가 선뜻 나섰고 김영만이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당근이야."
오성호의 시선을 받은 서미영이 웃었다.
"저두요."
오성호가 시선을 거두자 정현희가 눈썹을 찌푸렸다.
"왜 나한테는 묻지 않아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