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쇼로 전락한 일본 스모 (1)
기사입력 2000년 02월 06일 14시 57분
요즘 일본 스모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반란이 일어난 까닭이다.
지난달 21일 외신기자클럽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강연회가 열렸다. 지금까지는 주로 정치, 경제, 문화계의 저명 인사들이 강연자였으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평소 관심 밖이던 한 스모선수.
"40만엔을 받고 아케보노에게 져줬습니다."
이 한마디는 스모 경기가 한창이던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아케보노가 누구인가. 일본의 국기(國技)이자 일본인의 혼이 담겨있다는 스모의 요코즈나(천하장사)가 아닌가. 스모계의 최고선수가 돈을 주고 승리를 구걸했다니, 그 순간부터 언론과 일본 전체가 들끓는 건 당연했다.
스모협회는 즉각 이를 부인했고, 당사자 아케보노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잡아 뗐다. 허나 `야오초(八百長: 서로 짜고 경기하는 것)' 소동은 좀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은채 의혹은 커져갔다. 게다가 폭로 당사자인 사카이는 협회의 부인에 "절대적인 사실"이라며 펄쩍 뛰는 상황. 지난 2일에는 외신기자클럽에서 2차 강연회 겸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스모협회가 더러운 야합을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라며 발언 강도를 높였다. 스모협회의 사과요구는 한마디 대답으로 일축해 버렸다. "사과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스모협회입니다".
스모계의 야오초 소문은 그동안 일부 주간지에서 꾸준히 제기돼 오던 문제였다. 그때마다 스모협회의 부인과 직간접의 압력으로 소문은 유야무야됐고, 사실을 폭로한 스모인은 그 대가로 스모계에서 사장되곤 했다. 때문에 이번처럼 본인이 직접 나서 폭로한 적은 일찌기 없었다.
스모는 과거 머슴들이 즐겼던 우리네 씨름과는 달리 궁중이나 무가의 장군 등 귀족들의 고급놀이였다. 에도말기에서 메이지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게 된 것. 그 전까지는 일반인이 스모를 흉내내는 것조차 `불경죄'에 해당할 만큼 철저한 상류층의 놀이에 불과했다.
현재 스모는 대중성과 상업주의로 무장한 스포츠로 자리잡았지만 아직까지 예로부터 전해오는 금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여성과 용어 문제가 그것. 여성은 스모를 할 수가 없다. 경기가 벌어지는 도효(우리나라와 같은 타원형)에는 발조차 들여 놓을 수 없다. 또한 아침 일찍 스모베야(도장)를 출입해서도 안된다. 여성이 맨처음 스모베야에 들어오면 하루종일 재수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21세기 첨단과학시대를 살고 있건만 이런 고리타분한 터부는 사라질 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인 누구 하나 이런 불합리함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용어 사용에 있어 스모에서는 야구나 축구처럼 `연습'이나 `훈련' 대신 `게이코'란 말을 사용한다. 게이코는 학문이나 예술을 배우고 단련한다는 뜻으로 `연습'이란 말과 의미적으로는 같다. 다만 일본인의 얼과 혼이 담긴 스모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학술적 용어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스모를 신성하게 여기는 일본인들이기에 스모선수들(일본에서는 `선수' 대신 `역사(力士)'라 부른다)은 최고 권좌인 요코즈나에 오르는 순간 국민적 영웅이 된다. 재미있는 일은 이와 같은 스모계에 재일동포 출신 요코즈나가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