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하일성 - 프로야구 중계 PD의 애환
기사입력 2000년 02월 03일 12시 56분
한해의 프로야구가 스토브리그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중계방송도 시즌이 시작되면 방송사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간의 중계권료 협상으로 협상테이블은 뜨겁다.
프로야구가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라는 점을 들어 중계권료를 대폭 인상하려는 KBO측과 중계횟수와 기타 종목간의 형평성을 이유로 동결 내지 소폭 인상하려는 방송사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기 때문에 시즌 개막전까지도 타결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현재까지는 연간 단위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외국처럼 경기별로 중계권을 협상할 가능성도 있다. 데스크선에서는 중계권료 협상을 벌이고 야구팀장과 3∼4명의 PD들은 타이틀 제작, 기록요원 확보, 자료화면 편집 등 업무를 분담해 방송준비에 들어간다.
타이틀은 각 방송사들이 가장 신경쓰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기타 종목들은 타이틀을 한 번 제작하면 2∼3년 정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프로야구는 방송사의 중점종목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거의 매년 타이틀을 새로 제작한다.
타이틀 제작은 스퀴줌으로 화면을 분할 합성하던 초창기 방법에서 점차적으로 발전해 이제는 어떤 영상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는 컴퓨터 그래픽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각 방송사가 보유하고 있는 그래픽 장비의 성능이나 디자이너들의 능력이 타이틀 화면을 통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모두 최선을 다하지만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담당 PD와 여러가지를 동시에 맡은 디자이너 사이에 업무적인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기록이 없는 야구를 생각할수 없듯이 중계방송에서도 다양한 기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전문가 수준에 이를 정도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야구에서만 볼수 있는 다양함을 과학적으로 흥미있게 분석하여 방송에 간단 명료하게 표현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전문 기록요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관련 부서에서는 담당부서 만큼 이들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우가 낮을 수밖에 없어 우수한 기록요원 확보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개막전은 그해의 첫 중계방송인 만큼 각 방송사들은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에 버금가는 비중을 둔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팬들의 관심이 많은 경기를 중계하고자 하는 방송사들의 입장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계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협의를 거쳐 교대로 중계할 경기를 정한다.
우선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순서를 정하면 편성회의를 통해 방송시간과 채널을 확정한다. 그 다음 제작부서는 아나운서실, 중계부, 카메라실 등 유관부서에 담당자 배정을 의뢰하게 된다.
아나운서는 해설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담당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제작부서와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성능이 좋은 중계차와 경험 많은 카메라맨을 배정받고자 하는 PD와 똑같은 입장인 기타 제작부서 PD간의 일정이 겹칠 때 유관부서들은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야구는 특히 `대본이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리허설이 있을수 없기 때문에 상황이 벌어진 한순간을 놓친다는 것은 곧 그 중계방송이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인 TV프로그램에서는 대본대로 PD의 `콜'에 따라 TD가 스위칭을 하지만 스포츠 만큼은 한순간을 아끼기 위해 PD가 직접 스위칭한다.
PD는 나름대로 경기자체를 연구 분석해 수많은 상황을 머리에 담고 미리 예측을 하고 있어야 하며, 카메라맨에게 여러가지 화면을 요구하고, 또 눈으로 판단해 스위칭을 하는 과정에서 0.1초라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종목에 비해 특히 모든 사람들의 순발력이 요구되며 복잡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을 얼마나 짧고 명료하게 정리할수 있느냐 하는 PD의 연출력이 중계방송의 성패를 좌우한다.
중계방송은 현장 중계차에서 만드는 화면이 곧바로 시청자들의 가정에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방송국 스튜디오에 있는 진행 PD들은 현장에서 보내오는 화면에 타이틀, CM, 볼카운트, 스코어 등의 정보를 자막이나 영상으로 처리해 알기 쉽고 보기 쉽게 포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야구시즌이 본격적인 야간경기에 접어들어 중계가 이어지면 그만큼 담당자들의 애환도 쌓여간다.
가족들의 원성이 포화상태에 이를 무렵 포스트시즌이 시작되고,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다. 그리고 담당자들은 찬 맥주 한잔과 지나간 에피소드로 1년간의 피로를 씻는다.
다가올 시즌에 더 좋은 중계를 다짐하며 혹은 더 이상 프로야구를 담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야구해설가 hisbase＠chol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