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이종범을 보는 냉혹한 시선
기사입력 2000년 02월 01일 15시 18분
이종범이 맨처음 일본에 왔을 때만 해도 호시노 감독의 기대는 최고치였다. 이미 와 있던 선동열이 맹활약을 펼쳐 신뢰를 쌓은 덕분도 있었다.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의 무한한 가능성에 제 2의 선동열을 기대했다.
그리고 지금. 호시노 감독과 이종범의 관계는?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종범에게는 이것이 원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주니치 구단 관계자 A씨의 말이었다.
한국남자들은 국방의 의무를 통해 정제되고 규격화된 조직훈련을 받는다. 반면 일본남성들은 회사를 통하여 조직의 생리를 익힌다. 특히 일본은 한번 조직의 일원이 되면 공(公)만 존재하고 사(私)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계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더구나 거액의 상거래가 이뤄지는 프로야구에서는 이 룰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진다.
"일본선수라면 아니 프로선수라면 적어도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해서 단체로 이뤄지는 훈련에 개인적으로 빠지진 않습니다. 그것도 통역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고하는 그런 식의 태도는 더더욱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종범의 행동이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일본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죠. 감독은 단체 훈련을 통해 선수의 자질을 개발하고 아울러 다음 시즌 경기에 대한 구상과 전력을 짭니다. 적어도 일본야구 감독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 훈련에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했으니 호시노 감독의 머릿속에서 `이종범'이라는 이름이 지워진 것입니다. 당연하죠. 눈앞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전략을 짰을테니까요. 이종범은 호시노 감독으로부터 양해를 얻었다고 항변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종범은 아직 일본야구 생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린 사람도 아니고 프로선수가 아버지가 아프다고 못오겠다는데 감독이 뭐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알아서 하라고 할 수 밖에요. 가타부타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죠. 일일이 가르쳐서 프로를 만드는 아마추어 구단이 아니니까요. 다음 게임에서 빼버리면 그만입니다. 그게 바로 일본 프로야구의 생리입니다.
호시노 감독이 잠시 이종범을 제외한 건 단순히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유 보다는 이종범의 의식구조가 틀렸다는 생각 때문에서였을 겁니다. 그의 의식구조가 1군에 속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얘기죠."
이종범의 일로 주니치측과 길게 통화를 했다는 A씨의 말이다.
그는 선동열의 예를 들며 말을 이었다. 선동열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아주 위독했을 때 그의 구단 내 위치는 미묘했다고 한다. 슬럼프라고 할 만큼 미처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선동열 본인은 물론 구단 관계자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의 국보급투수라고 불리워졌던 대선수가 일본야구에 적응하지 못해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
그것은 일본선수들이 선동열의 야구에 대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집중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선동열의 구질이 오히려 일본선수들에겐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선동열은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그도 일본선수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훈련강도도 높였다. 위독한 어머니 소식을 듣고도 훈련에 매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지금도 호시노 감독의 선동열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해태라는 걸림돌이 생기자 냉정하게 공식적으로 그를 아웃시켰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프로세계의 생리가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아무튼 일본 스포츠신문 기자들은 호시노 감독의 처사에 전적으로 동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 억울하면 올해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해에 그 실력을 보여주면 될 게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닛칸스포츠' 기자도 있다. 개인적인 사정이 통할만큼 일본야구는 만만하지 않다는 사족까지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이 구단 저 구단을 헤매고 있는 노모의 예를 들었다. 또 자기관리를 한국스타일로 일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에 있는 조성민의 예도 들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듯 사적인 이유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일본 프로야구의 생리를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일본 기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이종범, 이젠 일본 야구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지 않았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