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7)

기사입력 2000년 02월 01일 15시 18분


아침에 출근한 이대진은 곧 사장실로 불려 들어갔다. 백주현 사장은 굳어진 얼굴로 그를 맞았는데 기획실장 백경일과 6부장 조재철이 양쪽에 앉아 있었다. 이대진이 자리에 앉자 백주현이 불쑥 물었다.

"대만과 KPS형 무전기 상담을 진행중인가?"

"예. 사장님."

"그리고 자네가 중국 대사관에 외교부 서기관을 사칭하고 전화를 했나?"

"그렇습니다."

그러자 백주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껌벅이며 이대진을 보았다.

"자네 어쩌려고 이러나? 조금전에 외교부 국장이 나한테 항의를 해왔어. 이게 무슨 짓이야?"

"중국은 내정간섭을 하고 있습니다. KPS 무전기는 규제품목이 아닙니다. 사장님."

"나한테 설교하는 거야?"

백주현이 상기된 얼굴로 이대진을 노려 보았다.

"그렇다고 외교부 서기관을 사칭해서 중국 대사관의 참사관을 협박해? 내가 담당 국장한테 어떤 망신을 당했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사장님."

"당장 거래를 끊어. 대만 오더는 받지말란 말이야."

"사장님."

머리를 든 이대진이 백주현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국내 기업에서 생산된 군장비가 일본이나 제3국을 통해 대만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일본이나 경유국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유독 한국만."

"그만해."

말을 자른 백주현이 소파에 등을 붙이더니 머리를 저었다.

"그래서 자네가 외교정책을 바꾸겠다는 건가? 그따위 수작으로 말이야."

"제 몫은 찾겠다는 의도였습니다만 사장님께 누를 끼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조재철이 헛기침을 했다.

"사장님, 국장이 전화를 해온 것도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공문을 보냈어야 합니다."

백주현의 강한 눈빛을 받은 조재철이 시선을 내렸지만 말을 계속했다.

"물론 특수팀장의 방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외교부도 떳떳하지가 않습니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투쟁 하자는 거야. 뭐야?"

백주현이 화가 풀리지 않은듯 목소리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내린 조치일 것 아닌가? 자네들이 뭘 안다고."

눈을 부라렸던 백주현이 결론을 냈다.

"내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한다고 했으니 사과하고 끝낼 거야. 그러니 대만 오더는 잊어. 알겠어?"

이대진은 머리만 숙였으나 조재철이 대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실을 나온 이대진과 조재철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넌 별 지랄을 다 하는군. 외교부 서기관을 사칭하고 중국 대사관 참사관을 협박하다니."

조재철이 말끝에 혀까지 찼다.

"언론에 터트리겠다고 했다면서?"

"그 새끼의 부패한 증거를 댔는데 그건 남들한테 말하지 않은 모양이구."

"쓸데없는 짓 말어. 사장한테 점수 잃을 짓 말란 말이다."

"조선배, 아니 조부장님."

걸음을 멈춘 이대진이 정색하고 조재철을 보았다.

"난 해낼테야. 그러니까 조부장님은 눈감아주쇼."

"이 빌어먹을 자식."

조재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곧 쓴 웃음을 지었다.

"내, 그럴줄 알았어. 네놈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