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109)
기사입력 2000년 02월 01일 15시 18분
구레항에 배치되어 있던 제1 잠수대군 소속 잠수함 두 척이 제4 호위대군에 뒤이어 간몬 해협을 빠져나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디젤 잠수함들은 수상전투함에 비해 속도가 매우 느리다.
후카미 해장보가 지금 염려하는 것은 제2 호위대군에 일시 배속된 잠수함의 숫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세력은 최근 몇 년 동안에 급성장했던 것이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령. 놈들의 잠수함도 우리와 마찬가지 형편입니다. 진해에서 출항하기에는 그들도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미 배치된 잠수함이라 하더라도, 제31 항공군의 오라이언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에가와 일좌가 후카미 사령의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이 해도판을 가리키며 자신있게 거들었다. 제2 호위대군이 문무대왕 전단을 유인해서 격파하기로 설정한 해역은 이미 오라이언들이 초계를 마친 해역이었다.
후카미 해장보는 고민하고 있던 부분을 에가와가 상기시켜주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오라이언 대잠초계기를 100여 대나 보유한 일본 해상자위대였다. 이것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수의 대잠초계기 전력이다.
"좋아.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이제 함장이 최선을 다해줄 때가 됐네."
후카미 사령이 미심쩍었던 부분을 마음 속에서 털어내며 에가와 일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부터 기함 구라마의 행동이 중요했다.
호위대 사령은 후카미 해장보이지만 구라마함을 지휘하는 함장은 에가와 일등해좌였다. 호위대 사령일지라도 예하 함정을 지휘하는 함장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신뢰가 잔뜩 담긴 눈길이 에가와 일좌의 어깨에 머물렀다.
"알겠습니다. 사령！"
기합이 잔뜩 들어간 에가와 일좌가 가슴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리고 부동자세를 취하며 절도있게 고개를 숙였다.
부산항 북동쪽 10㎞, 구축함 문무대왕
문무대왕함의 전투정보실 조명이 적색등으로 바뀌었다. 중요한 순간이라는 뜻이었다. 조명이 밝을 경우 모니터와 디스플레이들에 빛이 반사돼 자칫 중요한 표적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레이더 스코프가 밝은 색으로 빛나며 신현수 중사의 얼굴을 묘한 색으로 비췄다. 그 옆에 앉아있는 포술장 박동훈 대위가 두들겨대는 키보드 소리가 딸깍거리며 묘하게 들려왔다.
전투정보실 요원들이 각자의 콘솔에서 맡은 바 임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색한 침묵과 초조함 속에서 잔뜩 굳은 표정들이었다. 문무대왕 전단의 진로를 막아선 제2 호위대군과 결전을 치러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함장님！ 제2 호위대군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침로 공사십공(0-4-0)으로 향합니다."
대수상전(ASW) 사관이 보고했다. 일본 함대는 북동쪽으로 이동한다는 소리였다. 함장 안병도 대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정부실 중앙의 함장석으로 성큼성큼 움직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