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의 새로운 장인 `카리스마인'
기사입력 2000년 01월 30일 14시 33분
일본 미혼여성들은 지난 1월 16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8시 55분만 되면 TV 앞에 앉곤 한다. 마이니치 신문 소유인 TBS TV에서 하는 `뷰티풀 라이프'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다. 시청률이 무려 38%를 넘어 일간지 사회면에 보도됐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는 여주인공, 병원장의 아들로 헤어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와 미용실에서 일하는 남자주인공. 어딘가 3류 연애소설을 연상케 하는 뻔한 스토리인데도 젊은 일본여성들은 열광한다.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기무라 타쿠야(28)다. 그는 우리나라 여중고생에게도 상당한 인기가 있는 남자 탤런트로 현재 일본에서 최고 인기스타다. 일본남자들 중에서 기무라가 제일 잘 생겼다는 것이다. 일본여성들이 가장 연애하고 싶은 남자 기무라가 바로 매주 일요일 방송하는 `뷰티풀 라이프'에 남자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여성들의 눈이 모두 TV로 향할 수밖에. 그것도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카리스마 미용사'역을 맡았으니 말이다.
일본에는 조어가 참 많다. 일본어이건 외국어이건 자기들의 뜻대로 그럴 듯한 말을 만들어 사용한다. 지난 주에 말한 어른 흉내를 내는 어린 10대 소녀들을 일컫는 `고갸루'도 일본인들이 만든 대표적인 조어다. 80년대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책 제목 `옐로 캡'(Yellow cab)도 일본인 밖에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조어 중 한가지다.
`옐로 캡'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성적으로 문란한 일본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 택시 색깔은 대부분 노란색인데 여기에 빗댄 것. `아무나 탈 수 있다'는 비아냥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새 말을 만들거나 있던 말에 전혀 다른 뜻을 덧붙이길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또 한 단어를 유행시키고 있다. 매스컴도 이미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카리스마'라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카리스마'를 여기저기 아무 말에나 붙여 사용하곤 한다.
기무라가 연기하는 역도 사실은 `카리스마 미용사'다. 여기서 `카리스마'라는 것은 최고의 미용사, 즉 최상급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단순히 최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초인적인 기술, 주위를 압도하는 신비로움, 빨려들어가듯 흡입력이 강한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단지 미용기술이 최고라고 해서 `카리스마 미용사'라고 불리워지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카리스마성이 강한 일류 미용사를 `카리스마 미용사'라고 부른다.
때문에 `카리스마 미용사' 또는 `카리스마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졌다고 하면 브랜드 상품을 산 것만큼이나 부러워하고 또 최대의 자랑거리로 여긴다. 비천한 직업으로 여겼던 과거와는 정반대다.
`카리스마 미용사'가 많기로 소문난 곳은 우리나라 이화여대 앞 분위기와 비슷한 아오야마거리다. 일본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을 리드하는 `카리스마 아오야마' 거리답게 주말이면 삼삼오오 몰려드는 손님들로 미용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특히 연예인이 잘가는 미용실은 줄지어 기다려야 한다.
`카리스마 점원'도 요즘 일본매스컴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다. `카리스마 점원'은 백화점이나 미용실 등에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일하는 여성 점원들을 뜻하는 말. 원색적인 화장에 화려한 복장, 그냥 영락없는 고갸루의 모습이지만 이들에겐 `카리스마 점원'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요즘 젊은 여성들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연예인이 유행을 퍼뜨리고 리드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 `카리스마 점원'들이 유행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시부야의 109백화점은 이들 덕분에 무려 매상고가 1200%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카리스마점원이 골라주는 것은 무엇이든 손님들이 `OK'한다는 것. 그만큼 상품을 보는 안목이나 센스가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는다. 덕분에 이들 카리스마 점원은 연예인들보다도 더 인기있는 스타다.
아무튼 조직이나 규율을 강조했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유분방함과 개성을 중시하는 일본현대사회가 낳은 `카리스마인'.새로운 일본식 장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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