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4)

기사입력 2000년 01월 28일 14시 12분


사내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극동전자의 고성능 무전기를 대만으로 판매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그것을 문서로 작성해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문서로 말이오?"

이제는 사내의 회화 실력보다 내용에 자극을 받은 위자영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갑자기 왜 그것이 필요합니까?"

"아무래도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해당업체의 반발을 무마하려면 공문서가 필요합니다."

"이것 보시오. 김 서기관."

배에 힘을 준 위장영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당신 차관하고 상의를 해보시오. 그러면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일은 내 소관입니다. 위 참사관."

김일규의 목소리도 굵어졌다.

"참사관께서 우리 차관한테 직접 연락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담당자인 저로서는 이 일을 차관과 상의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 재미있군 그래."

눈썹을 치켜올린 위자영이 입술 한쪽을 비틀며 웃었다.

"그럼 내가 다시 차관한테 말해 드릴까? 그런 공문서는 작성해 보낼 수가 없다고 말이오. 그리고 국가간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서로 상대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묵계가 통용된다는 사실을 김서기관께 조언으로 전해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데."

김일규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국측 생산업체인 극동전자측에서 이 문제를 언론과 시민단체에 폭로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요. 차관께서도 처리하시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렇다면 우리측 공문서를 어디에다 쓸 계획이었소?"

이제는 위자영이 거칠게 물었으나 김일규의 목소리는 더 가라앉았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한국과 중국과의 동반관계를 내세워 설득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니까요. 우리가 그 근거를 갖고 있어야지 참사관의 전화 한통으로 국내 기업체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한중 양국 관계에 흠이 됩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으나 위자영은 목구멍으로 신음소리만 뱉고는 한동안 눈만 껌벅였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대사는 극동전자를 철부지같은 놈이라고 표현을 했었고 자신은 모든 것이 잘돼간다는 보고를 했던 것이다. 그가 입을 떼었다.

"우린 공문서를 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쪽에서 그 생산업체를 설득시키든지 압력을 넣든지 하세요."

"만일 중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 우리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닐 텐데요?"

김일규가 묻자 위자영은 몸을 굳혔다. 이제까지 한국 외교관으로부터 이런식의 위협성 발언을 들은 적이 없는 것이다.

"이봐요. 김 서기관."

"예. 위 참사관님."

"양국의 동반관계가 하찮은 기업체 하나 때문에 허물어지도록 내버려 두겠단 말이오?"

"저희들로서는 능력밖의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국측에서 도와 주셔야지요."

이제 위자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공문으로 대만에 군 장비를 수출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을 적어 한국측에 보낼 수는 없다. 이것은 명백히 한국에 대한 주권 침해는 물론이고 국제법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이윽고 위자영이 헛기침을 했다.

"내일 다시 연락을 합시다. 우리가 상의를 해 볼테니까."

"내일 이시간에 다시 전화를 드리지요."

전화기를 내려놓은 위자영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에 무럭무럭 화가 치밀었다. 중국 같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