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의 횡설수설 '박하사탕의 진한 한턱'
기사입력 2000년 01월 28일 14시 07분
박하사탕 한알이 문제였다. 함부로 내뱉는 내 입이 문제였다. 지난주에 나는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너무 좋아서 그 좋았던 얘기를 여기다 썼었다. 그냥 썼으면 좋았는데 막판에 추신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술 한잔 사겠다는 얘기를 썼었다.
설마 나한테 실제로 술한잔 살 기회가 오랴 하면서 그냥 상징적으로 술한잔 사겠다는 얘기를 글 끝머리에 써 넣었었다. 그리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KBS에서 `체험 삶의 현장' 녹화를 막 끝나고 나오는데 내 매니저가 명계남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전달해 주었다.
"뭐? 명계남이가 나를 찾아?"
같은 연예계에 몸 담고 있지만 그자가 영화배우이고 내가 가수이지만 명계남이와 내가 전화통화를 한다는 것은 도무지 언어도단 황당무계로만 여겨졌다.
물론 하늘에 맹세코 명계남 선생이 영화 `박화사탕'과 관계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처지였다.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했다.
"나 가수 조영남입니다. 명계남씨 어쩐일로 저한테 전화를 주셨습니까?" 대충 이런 투로 얘기를 했다.
명계남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선을 통해서 들려 왔다. 명배우와(명배우할 때의 명과 명계남할 때의 명이 아주 상관 없을 텐데도 괜히 웃긴다) 직접 통화를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데 나는 깜짝 놀랐다.
"형님, `박하사탕'을 제가 제작했는데요."
여기서 `박하사탕'이란 영화를 안 본 사람 혹은 그런 영화가 있는지 소문도 듣지 못한 사람은 조영남이가 뭔 소리를 하는지 도대체 느닷없는 `박하사탕'얘기가 왜 나오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여기서 명계남 명배우가 `박하사탕'을 제작했다는 것은 명계남이고 배우를 때려치우고 `박하사탕'공장을 차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는 좋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일부 덜지각(몰지각이 아니다)한 사람이 있어서 나한테 이런 노파심이 생겼다.
하여간 나는 백주 대낮에 전기를 쐰것처럼 뻥해졌다.
`아니 명계남이가 `박하사탕'을 제작했다구?' 이런 느낌을 보내구 있을 때 저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그치는 듯한 말투가 들려왔다.
"아니 형님 영화자막 안 읽었습니까?"
그 얘기에 나는 `아하! 명계남이가 진짜 박하사탕을 제작했구나!'하는 일종의 신뢰감이 들었다.
어쨌던 나는 "빨리 만나서 한잔 하자"해서 바로 어제 저녁 나는 `박하사탕'의 제작자 명계남 명배우를 만났고, 더불어 또 한 사람 명배우 문성근도 만났다. 물론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을 직접 만든 이창동 감독도 만났다.
여자가 있는 술집에서 진하게 한잔 샀고 나는 지금 술마신 다음날 @@ 토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창동은 이름이 그래서 이상했지만 이름과는 영 달랐다. 창은 창녀할때 창같고 동은 괜히 양동할 때 동같아서 이름이 참 찬란하다고 얘기했다.
이름은 그랬지만 이창동은 박하사탕보다 더 향내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밤새 술을 마시면서 나는 알았다. `박하사탕'이라는 혁명적인 영화의 제작자가 명계남이라는 것도 확실히 알았다.
P.S: 술마신 날 2000년 1월 26일을 우리는 `한국영화 혁명의 날'로 정했다. 그래서 축하파티를 연거다. 다시는 한잔 사겠다는 얘기를 안하겠다. 돈이 엄청깨졌다.
조영남[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