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아쿠타카와상 공동수상자는 게이였다
기사입력 2000년 01월 25일 14시 00분
아쿠타카와상 수상자가 결정되던 지난 14일 오후 6시경. 도쿄 신바시에 있는 일본의 전통 요정 신기라쿠에는 낯익은 신문사 문화부기자들이 한 두 명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TV기자들은 벌써부터 카메라세트를 설치하고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5시부터 1층과 2층에서는 각각 아쿠타카와상과 나오키상 수상자 선정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기자대기실. 큰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없이 기자들은 모두 묵묵히 차만 마시고 있었다.
드디어 7시 10분. 미야모토 선정위원장이 서류봉투를 들고 기자대기실에 나타났다.
"이번 아쿠타카와상은 `그늘의 소굴'을 쓴 현 월씨와 `여름의 약속'을 쓴 후지노 지야씨(37)가 공동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현씨와 함께 공동수상자가 된 후지노씨는 `동성애'와 `성전환'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주목을 받은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남성 동성애자 커플과 성전환을 한 젊은이들이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가면서 쌓아가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서로 애완견을 나눠주며 의지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미야모토씨가 설명을 하는 도중, 나오키상 수상자가 결정됐다는 메모가 전달됐다. 작사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나카니시 레이씨(61)였다.
그러자 기자들이 일제히 핸드폰을 빼들었다. 1초라도 먼저 수상자명단을 보도하기 위해 열심히 세 사람의 이름을 외쳐 댔다. 기자대기실이 소란스럽자 화장실로 달려가 일본문학진흥회가 미리 배포한 자료를 보고 프로필을 읽어대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이동. 수상소식을 들은 작가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신바시로부터 마로노우치의 도쿄회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일동포 2세인 현씨는 오사카에 살고 있으므로 참석불가.
그래서 기자들은 도쿄회관으로 향하는 찻속에서 핸드폰으로 현씨와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모든 기자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인터뷰를 하려다보니 현씨의 핸드폰은 그야말로 마비될 지경이었다.
도쿄회관 기자회견장. 초로의 신사인 나카니시씨와 `여성작가' 한 명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후지노씨였다. 적당히 긴 퍼머머리, 갈색의 원피스위에 까만 가디건을 걸치고 키가 1@80㎝정도 됨직한 장신의 여성. 기자들의 눈에 비친 후지노씨의 첫 모습이었다.
그동안 TV뉴스에서는 사진과 함께 수상자의 이름을 보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은 남성작가 두 명에 여성작가 한 명이 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일부 문화부기자들도 그렇게 알고 전화로 기사를 불렀다. 그런데 회견장에 도착해 플래시가 터지고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으로 알려졌던 후지노씨에게 뜻하지 않은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 성전환수술을 할 예정입니까?", "사랑하는 남자는 있습니까?"
이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후지노씨. 사실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던 것이다. 볼록하게 나온 가슴과 여성스런 목소리는 6년전부터 여성호르몬을 맞아온 때문이었다. 지바대학을 나와 9년동안 만화편집자로 일하다가, 여성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게 문제가 돼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덕분에 이튿날 스포츠지와 포토매거진엔 그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역시 일반 독자들이었다. 겉모습만으로는 다소 억세보이지만 영락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선정위원회는 "어두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 테마를 아주 가벼운 터치로 유니크하게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후지노씨의 아쿠타카와상 선정이유를 밝혔다. 그 어떤 무거운 테마도 그의 손을 거치면, 밝고 가벼운 소설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번 아쿠타카와상은 이래저래 화제만발이다. 한 사람은 재일동포 2세, 나머지 한 사람은 소위 게이라고 하는 동성애자. 이런 일들을 보면 역시 일본은 부침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화스런 나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