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1)
기사입력 2000년 01월 25일 14시 00분
김영만은 특수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2년 반이 지났으니 이대진을 팀장이라기보다 사부로 모시는 편이었다.
그것은 입사동기인 최경태나 정현희도 마찬가지였지만 김영만은 유별났다. 이대진의 모든 행동이 그에게는 귀감이 되고있는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승자가 곧 선이며 수단이 정당했더라도 패자가 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배우고 익혔다. 또한 적과 우군의 구분은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변할 수가 있는 것이며 서로 이용가치가 있어야만 관계가 시작 된다는 것도 알았다.
모두 이대진의 행동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여 굳혀진 것인데 조금도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회사 전체가 그런 분위기에 쌓여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전 9시 반이 되었을 때였다. 김영만은 이대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의 직속 상사인 오성호가 궁금한 듯 반쯤 의자를 돌리고는 쳐다 보았으나 모른 척 했다.
"보스,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대진이 눈만 치켜뜨자 그는 헛기침을 했다.
"4부 2팀에서 대만 오더를 받았는데 중국 대사관이 외교부를 통해 압력을 넣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더를 보류시키고 있다는데요."
계속하라는 듯 이대진이 머리만 끄덕였고 김영만은 목소리를 낮췄다.
"KPS형 입니다. 대만은 군과 경찰용으로 사용하려는 것 같은데 수량이 1만개나 됩니다."
KPS형 무전기는 극동전자에서 개발한 포터블세트로 규격과 무게를 기존 무전기의 3분의 1로 줄인 대신 통신거리는 2배이상 증가되었다. 그래서 극동전자는 작년에 군용으로 2만개를 제작해서 납품시켰다. 그러자 오성호가 나섰다.
"아니 KPS형은 작년말에 미국과 호주로도 실어 보냈지 않어? 규제품목도 아닌데 중국에서 왜 지랄이야?"했지만 무전기를 군용무기로 분류시킨다면 절차가 복잡해진다. 중국은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대진이 오성호를 돌아보았다.
"압력이 어느곳에서 왔는지를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성호가 김영만을 향해 눈을 흘겼다.
"넌 어젯밤 나하고 술 먹을 적에는 무전기의 무자도 꺼내지 않더니 보스한테만 직보 하는 거냐?"
"같이 계실 때 한 몫에 하려고 한겁니다."
눈을 치켜뜬 김영만의 입술이 부풀려졌다.
"그러고 보스한테 직보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제기랄 놈."
"이봐. 그만 해."
정색한 이대진이 김영만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넌 방산연합회에 가서 무전기 수출 승인을 다시 한번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김영만의 돌아서자 오성호가 투덜거렸다.
"보스, 저놈이 나를 타깃으로 삼는 것 같습니다. 요즘 애들은 도무지 위아래가 없어요."
"우리가 적응해야 돼."
이대진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오성호를 보았다.
"고생을 모르고 성장해서 기가 쉽게 꺾이는 경향도 있지만 기를 살려주기만 하면 능력은 몇배로 늘어난다."
"하긴 요즘은 1년이 1세대라고 하니까요."
입맛을 다신 오성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먼저 산자부에 다녀 오겠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외교통상부에도 들리지요."
오성호가 나가자 이대진은 다시 컴퓨터의 키를 눌렀다. 그러나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서 모니터 화면의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경희가 떠난지 1주일 째였다. 끌려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인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