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아쿠타카와상 받은 재일동포 2세 현 월씨
기사입력 2000년 01월 24일 13시 18분
한 남자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 어느날 갑자기 소설을 쓴다고 책상 앞에 매달려 있는 모습. 재일동포 2세 현 월씨의 소설쓰기는 이렇게 시작됐고, 현씨의 가족들은 당연히 불안해할 수 밖에 없었다.
－스물일곱살에 갑자기 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나.
▲그때까지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열망이 나를 책상 앞에 앉아 있게 했다.
－지금까지 이회성, 고(故) 이양지, 유미리씨 등이 아쿠타카와상을 받았다. 혹시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진 않았는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하지만 작품 세계는 확연이 다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는 `화산도'를 쓴 김석범선생이다.
－한국어는 잘 하는가. 일본어에 대한 위화감은 없었는가?
▲지금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으나 인삿말 정도밖에는 할 줄 모른다. 그리고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한국어가 외국어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제주도 방언은 내게 아주 익숙한 말이다. 친척 아주머니들이 모이면 제주도 사투리로 대화를 하는데 서울 사람들은 이를 못알아 듣는다. 나는 한국에는 두 번 정도 갔는데 말은 안 통해도 아버지의 나라라 그런지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친밀감을 많이 느꼈다.
－당신의 소설은 모두 재일동포 사회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적문제를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님 두분 모두 한국인이고. 내가 태어나 자란곳도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재일 한국인들의 세계를 그린 것이지 의식적으로 재일동포문제를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일동포 독자들 중에는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그린 소설은 읽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알고 있다. 하지만 어렸을 적 학교를 다닐 때 학생들 반 이상이 재일동포였다. 앞으로 내가 재일동포 사회에 대해서 글을 더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산다는 것', 그 줄기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훗날 아이들에게 나의 뿌리, 나의 삶, 즉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려고 한다.
－한국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적은 있는가. 또 앞으로의 계획은?
▲윤흥길씨의 `장마'를 인상깊게 읽었다. 역시 한국적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안으로 몇 편의 소설을 더 써서 단행본으로 출판하려고 한다. 그저 열심히 쓰고 싶을 뿐이다.
현씨의 고향은 제주도. 구두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아버지 현종민씨(71)와 어머니 오순녀씨(70) 슬하 3남 2녀 중 막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가 경영하는 구두공장에서 일을 거들면서 결혼도 했다. 며느리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들의 얼굴표정에는 싫어하는 빛이 역력했다고 한다. 현재 현씨에게는 8세와 5세가 된 남매가 있다.
그는 96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학교에 등록한 후 습작활동을 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동인지를 만들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현씨가 두각을 나타낸 것도 이 때였다. 동인지 창간호에 발표한 `타국에 떨어진 아이'라는 소설로 98년 `고베나빌문학상'을 받았고, 역시 98년 같은 동인지에 발표한 `무대배우의 고독'은 문예춘추로부터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 수상을 계기로 중앙문예잡지인 `문학계'에 작품을 싣게 됐고, 제 8회 `고타니 쓰요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어서 작년에는 테마가 다소 특이한 `오빠이'(젖)라는 소설로 아쿠타카와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일제시대 때 일본군으로 끌려가 한쪽 팔을 잃은 재일동포 노인의 눈을 통해 재일동포사회를 그린 `그늘의 소굴'로 마침내 상을 받게 된 것이다. 문학평론가들은 이회성, 김석범, 양석일씨등 재일동포문학을 잇는 선이 굵은 작가가 태어났다고 극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