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27)
기사입력 2000년 01월 21일 14시 26분
김재선이 부하 요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한시간쯤 후였다.
"인사동 한정식집에서 나오지 않아서 들어가 보았더니 뒷문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부하 요원의 목소리는 풀이죽어 있었다.
"저희들의 미행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날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냐?"
버럭 소리쳤던 김재선이 입맛을 다셨다.
"둘이 눈이 맞은 것 같군 그래. 아마 김경희의 제의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선의 표정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수선떨 것 없다. 오늘밤은 내버려 둬라. 내일 아침에 이대진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재선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었다.
"이대진이가 기어코 깃발을 꽂는 구만. 어쨌거나 수단이 좋은 놈이야."
한강변의 모텔은 시설도 깨끗하고 주변 분위기도 좋았지만 불안정했다. 이른바 러브호텔로 이용되는 곳이어서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의 번호판에는 모두 덮개가 씌워졌고 숙박부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종업원도 교육을 잘 받은 모양으로 이대진과 김경희를 방으로 안내하면서 한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밤 11시 30분이었다. 종업원이 방을 나가자 창가로 다가 선 김경희가 커튼을 닫았다.
"호텔의 시찰단원 중에도 내 행동을 감시하는 자가 있어. 아마 그자도 지금쯤 당황하고 있을 거야."
이대진은 침대 옆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김경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살색 스타킹을 신은 김경희의 미끈한 다리를 보자 목이 막히는 느낌과 함께 성욕이 일어났다. 김경희가 몸을 돌려 이대진의 시선을 잡았다.
"어떻게 해봐.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어 보란 말이야."
"제기. 그러면서도 제가 주도하는군."
쓴웃음을 지은 이대진이 저고리를 벗어 탁자 위에 놓았다.
"어쩐지 남북간 전쟁을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래."
"한국의 TV연속극에서처럼 사랑이 어쩌구 한다면 오바이트를 해버릴 거야."
"보통 자연스런 관계라면 여자가 씻고 오겠다면서 먼저 화장실로 가는건데. 그러면 남자는 벗고 침대에서 기다리고."
"남자는 안씻나?"
"대개는 씻고 왔다면서 기다려."
김경희가 코트와 블라우스를 벗더니 의자 위에 걸쳐 놓았다 그러자 분홍빛 셔츠에 스커트 차림이 되었다.
"마음에 안들어. 다른 방법은?"
의자에서 일어난 이대진이 다가가자 김경희가 눈을 크게 떴다.
"씻지도 않고 그냥 행동으로 옮기는 거야?"
이대진의 입술이 부딪쳐 왔을 때 마침내 김경희는 눈을 감았다. 두 손으로 김경희의 허리를 당겨 안은 이대진은 김경희의 입술을 빨았다. 저항하듯 상체를 뒤로 젖혔던 김경희의 몸이 차츰 늘어지면서 꽉 닫혔던 입술이 열렸다.
이대진은 아직도 입 안에서 주춤거리는 김경희의 혀를 끌어 내었다. 이윽고 김경희의 처져 있던 두 손이 이대진의 목을 끌어 안았고 하체가 저항없이 붙여졌다.
침대 쪽으로 김경희를 밀어붙인 이대진이 침대 위로 쓰러뜨렸을 때였다.
"불을 꺼줘."
눈살을 찌푸린 김경희가 말했지만 이대진은 거칠게 브래지어를 벗겨냈다. 스커트와 스타킹을 끌어내리고는 서둘러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는 동안 김경희는 팔로 두 눈을 가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진은 환한 빛에 싸인 김경희의 알몸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감동으로 온몸이 굳어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