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의 성인식 문화(2) - 성인식과 `고갸루'
기사입력 2000년 01월 17일 14시 40분
`성인의 날' 공휴일을 맞아 모두들 해외여행으로 일본을 빠져나가자 시내가 한산해졌다. 시내 곳곳에 넘쳐나던 기모노차림도 예년같지 않았고, TV의 특별프로그램도 별로 없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성인식을 치르는 `고갸루'들의 모습이 집중적으로 방송된 것이다. 지난주 일주일 내내 `고갸루'에 대한 특집방송이 나왔다.
일본에는 `고갸루'라는 고유명사가 있다. 일어사전에도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일본인들이 만들어 부르고 있는 조어다. 일본어과 영어를 합성시킨 것으로, 10대소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갸루'의 `고'는 `고도모'(어린이)의 앞자를 따온 말이고, `갸루'는 `걸'(girl)을 일컫는 말. 행태가 나쁜 소녀들을 지칭한다. 그래서 일부러 속어인 `갸루'(gal: 일본인들은 r발음이나 l발음이 되지 않아 그냥 나열식으로 발음을 하기 때문이 `갈'이 아닌 `갸루'가 됐다)라고 불렀다. 결국 어린애같은 소녀, 철부지 소녀라는 뜻이다. 이 말은 속어이기 때문에 착실한 소녀는 절대로 `고갸루'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면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기자도 있다.
일본에서는 소(小, 少)자를 `고'로 읽는다. 그래서 작(적)은 것을 나타낼 때는 단어 앞에 `고'를 붙인다. 예를 들어 조그만 접시를 이를 때는 `사라'(접시)라는 단어 앞에 `고'를 붙여 `고사라'라고 한다.
이처럼 10대 소녀들이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갸루' 앞에 `고'를 붙인다. 결국 `고갸루'라는 말에는 젓내나는 어린애들이 성적(性的)으로 어른흉내를 내며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비난이 담겨 있다.
원색적인 짙은 화장에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머리, 팬티가 보일 듯 말듯 히프 위로 치켜 올라간 미니스커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지면과 점점 멀어져 무려 20㎝에 육박하는 굽높은 구두, 열 손가락 모두를 치장한 갖가지의 그림들, 선탠한 피부 위로 하늘하늘 받쳐입은 꽃무늬 원피스….
일본인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고갸루'의 모습이다. 몇 년전부터 일본 언론에서 정식으로 부르기 시작한 이 `고갸루'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선은 매우 차가웠다. 볼썽 사나운 옷차림에 도깨비같은 화장, `원조교제'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것 같은 불량스런 이미지가 바로 `고갸루'였던 것이다.
실제로 `고갸루' 중에는 등교거부를 한 채 거리를 방황하는 여학생들이 많았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소녀도 있었다. 때문에 학교 당국이나 부모들은 이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함 그 자체. 거리로 뛰쳐 나온 `고갸루'들은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반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제일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역시 발빠른 매스미디어. 그 다음이 유통업계였다. 문제아, 이단아로 취급해 연일 비난기사를 내보내던 언론은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하루 일과, 심리변화 등을 다룬 분석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이어 10대들이 잘 모이는 하라주쿠나 시부야의 거리상점, 대형백화점에서는 `고갸루'를 상대로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고갸루'들이 잘 먹는 요리, 잘 입는 옷, 패션경향을 분석하여 집중적인 서비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성인의 날'에는 기모노차림으로 담배를 물고 성인식에 참석한 소녀들의 모습과 `고갸루마마'의 하루일과를 여과없이 그대로 방송했다.
아침 일찍 남편을 출근시키고 대충 집안청소를 한 다음, 짙은 화장을 하고 찢어진 청바지에 쫄티를 입고 아이를 대동한 채, 시내로 나와 친구와 함께 가라오케에서 춤을 추고 저녁 때까지 놀다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갸루마마'의 모습이 잔잔하게 다뤄졌다.
예전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갸루'에 대한 긍정적인 프로였다. 그 어디에도 이들을 비난하거나 비하시키려는 의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비슷한 프로그램이 여러차례 방송됐다.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을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