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오태석 특유의 생명력 무대 가득한 `여우와 사랑을'
기사입력 2000년 01월 14일 14시 11분
오태석의 작품은 늘 활기에 차 있다.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때로는 어수선하게 느껴질만큼 장면전환이 빨라 보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기는 하지만 그 또한 살아있는 `라이브'만이 줄 수 있는 감흥이다.
서울 대학로 아룽구지극장에서 공연중인 `여우와 사랑을'(오태석 작,연출)은 이런 그의 미학이 집약된 작품이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의 소리, 색깔, 몸짓이 90분 동안 시끌벅적하게 펼쳐진다.
연변동포들의 고단한 서울살이가 소재. `돈이 최고'라는 서울의 불문율을 외우며, 용정에 `윤동주 기념 도서관'을 짓기 위해 땀흘리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을 등쳐먹으려는 사기꾼들은 이들의 순진함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기꾼의 제안으로 그들은 남한땅에서 사라진 여우를 연변에서 수입한다.
순박한 연변동포들은 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듯 일제와 6.25 등 최근의 역사속에서 `빨리 빨리'만을 강조하며 살아온 우리가 상실해가고 있는 원초적인 성정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난다. 여우 또한 잃어버린 것을 상징하는 매개체다.
사기꾼 역을 맡은 박희순은 그동안 보여줬던 연기톤에서 벗어나 얄미우면서도 코믹한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고, 황정민 장영남 조미혜 등 `연변처녀'들의 호흡은 원숙하다.
넓지않은 공간을 100% 활용하는 안무와 깔끔하게 정제된 노래도 재미있다. 96년 초연때는 연변으로 돌아갔던 동포들이 이번 재공연에서는 서울에 남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결론 또한 `새천년 버전'답다. (02)745-3966 [김형중 기자 hkim＠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