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18)

기사입력 2000년 01월 11일 14시 58분


"이봐, 6부 팀장 중에서 누가 영향력이 강하지?"

백경일이 불쑥 물었으므로 차만석은 긴장했다. 질문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글쎄요. 저는 잘."

저녁 10시가 넘어 있었는데 백경일의 저택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는 터라 백경일은 조깅복 차림이었다. 그가 답답하다는 듯이 눈썹을 조금 찌푸렸다.

"내 말은 누가 부장으로 적합하겠느냐는 뜻이야."

"그야 1팀장이 아닐까요?"

"조재철이 부장이 되면 사원들의 반응은 어떨 것 같나?"

"글쎄요. 그것이."

차만석이 시선을 내렸다.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오로지 능력에 따라 승진시키겠다고 백주현 사장은 누누히 강조해왔던 것이다. 그 기준으로 보면 부장감은 단연 특수팀장 이대진이다.

1팀장 조재철보다 경력이 2년 뒤지지만 2년 연속 20개팀 중에서 1,2위를 차지했고 6부의 4개팀에서는 톱이었다.

자신이 지금 대단히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은 차만석이 결심한 듯 머리를 들었다.

"실장님, 1팀장이 부장이 되면 6부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영업부 내에서도 반발이 심할 것 같습니다."

"그럴까?"

"실적별로 평가하면 특수팀장이 단연 앞선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대진이 부장이 되면 반발이 없을 것 같나?"

"대부분은 납득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1팀장이."

"그렇겠지."

머리를 끄덕인 백경일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도 이대진의 비리를 찾아내지 못하다니. 난 이해가 안가."

"노력했지만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야?"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말해봐."

"이대진은 이번 북한 오더를 진행하면서 정부 요인과 접촉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몇번 같이 만났습니다만 회사의 홍보에 도움이 되었지요."

백경일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금감원의 하국장과 통화한 후로 그는 북한 오더에 대해서는 그냥 도장만 찍어온 것이다. 정색한 차만석이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실장님께서 위에서 감싸 주시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이대진이 의리는 있다는 소문이 났거든요."

차만석의 긴장한 시선을 받은 백경일이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자네 혹시 이대진이 한테 세뇌당한 것 아냐? 나한테 역공작을 하는 것이 아니냐구?"

"제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런 말씀 하시면 저는 괴롭습니다."

차만석이 비통한 표정으로 항의하자 백경일이 손을 저었다.

"이봐. 농담이야. 농담도 못하나?"

그날밤 12시가 되었을 때 이대진은 차만석의 전화를 받았다. 막 샤워를 마치고 자려던 참이었는데 차만석의 목소리는 술기운으로 느려진데다 혀도 뒤틀려 있었다.

"보스, 증말 괴롭습니다. 양다리 걸치기가 말입니다."

그가 백경일을 만났다는 것을 아는지라 이대진이 입맛을 다셨다.

"인마, 주관만 똑바로 가져. 그러면 되는 거다."

"보스, 6부장이 곧 갈릴 것 같습니다. 최부장이 LA 지사장으로 갈 것 같구요."

그는 끄르륵 트림을 했다.

"보스하고 조재철 둘 중 하나가 부장이 될 것 같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