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은 지금 가상전쟁 준비중②
기사입력 2000년 01월 04일 14시 42분
일본정부가 비상 사태를 선언한 것은 그냥 말뿐인 엄포가 아니었다. 총리실 직속 `Y2K 비상대책실'이 조직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고, 실제로 Y2K문제가 터졌을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만전의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해마다 국방비를 증액시켜온 자위대는 12월 들어서면서부터 전후 처음으로 `전국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또한 경찰과 공무원, 금융기관 등의 관계자 200만명은 비상전화, 인터넷을 열어놓고 28일부터 1월 5일까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경계근무에 들어갔다.
그런가 하면 경제대국답게 각 수퍼에서는 `Y2K 세트'라고 해서 1인용, 4인 가족용 등으로 컵라면 생수 양초 부탄가스 건전지 등을 박스에 넣어 팔고 있었다. 당연한 현상이지만 이 세트는 12월의 최고 인기상품이 됐다.
가장 북적대는 곳은 역시 은행.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아 한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은 기본. 신문과 TV방송에서, 가능하면 예금을 전액 찾아놓거나 잔액증명서를 발급받아 놓으면, 컴퓨터 오류가 생겨도 즉시 보상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기 때문에 각 은행은 붐빌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Y2K문제를 놓고 희한한 분석이 제기됐다. 만약 Y2K문제가 실제상황이 됐을때 과연 복구가 가능한가. 또 복구에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국가별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본 것이다. 일본정부 관계자가 분석한 이 가상 시나리오 속에는 물론 한국도 포함돼 있었다.
Y2K문제가 실제 상황이 됐을때 가장 위험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평가. 만약 미국이 그 문제에 닥치면 즉시 `준전쟁상태'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몇년전에 있었던 LA 흑인폭동을 예로 들었다. 마구잡이로 훔치고, 부수고, 죽이는, 그 몇십배의 폭동과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이같은 폭동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진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일본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Y2K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 평가는 최악의 미국과 대동소이했다. Y2K문제가 실제상황이 됐을 경우 한국은 대혼란에 빠진다고 내다봤다. 강도 약탈 살인이 난무하고, 질서가 파괴되며 복구에 걸리는 시간은 약 2개월이라고 분석했다.
복구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한국정부가 실제상황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지 못하고, 말그대로 형식적인 준비를 했기 때문이란다. 거기에다 국민성이 워낙 매사를 `대충대충' 끝내는 스타일이라 실제 Y2K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분야, 어떤 부문부터 손을 써야 될지, 우왕좌왕 헤매는 시간도 적지않을 거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는 5일에서 일주일만에 정상복구가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그 근거로 이미 오래전부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각분야별로 전산식의 기계작동이 아닌, 사람이 수동식으로 직접 연습해왔기 때문에 큰 혼란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일본은 그동안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각종 전산처리 시스템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처리하는 수동식과 병행해왔다.
하지만 일본이 복구작업에 유난한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은, 5년전 고베지진의 경험 때문. 당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태에서도 일본인들은, 세계인들이 깜짝 놀랄 만큼 차분하게 복구작업을 벌여, 완벽하게 지진 이전의 생활로 되돌려 놓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여하튼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선진국들을 초긴장속에 몰아넣은 Y2K문제. 특히 하루에도 수십번씩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 늘 비상사태를 위한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인들은 이번 Y2K문제로 곱절의 법석을 떨었다.
덕분에 해마다 연말이면 나랏님 만나는 것 만큼 구하기 어려웠던 한일간 비행기 티켓이 올해는 일본인들의 무더기 해약사태로 남아도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시한 번 일본인들의 조심성을 엿보게한 집단행동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