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로버트 할리 'Y2K 작은 고생 큰교훈'
기사입력 2000년 01월 04일 14시 39분
어느덧 한세기가 지난 일이지만 나는 지난 연말이 다가왔을때 새해를 어떻게 맞이할까 궁리를 많이 했다.
가족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 대망의 2000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여행이 제일 낫다는 결론에 다달았다.
그런데 얼마전 비디오 카메라를 잃어 버려 새것이 하나 필요했다.
1000년이 바뀌는 대변화의 시기인데 그냥 눈으로만 확인할수 없잖은가.
그래서 1999년 마지막날 용산 전자상가를 돌아 다니면서 `어디 싸고 좋은 비디오 카메라가 없나'하고 눈에 불을 켰다.
마침내 한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돈을 지불하려는데 웬걸 현금이 부족한게 아닌가.
급히 현금지급기를 찾으려고 하자 점원은 기계를 사용할수 없다고 했다.
Y2K(컴퓨터 2000년 인식오류)때문에 12월 31일부터 1월 3일까지 모든 은행의 업무가 정지되고 당연히 현금지급기도 작동이 되질 않는다고 했다.
왜 나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
평소 영자신문을 읽는데 그런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기사가 나왔는데 아마 내가 지나쳤을 가능성이 많다.
물건값이 부족한게 문제가 아니라 4일간을 현금 한푼 없이 지내야 되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그 유명한' 할리가 꼼짝없이 Y2K에 당하게 된것이다.
다행히 점원은 이 할리를 잘 알아봐 며칠후 돈을 지불하라는 편의를 봐주었다.
하지만 나는 지갑에 만원 지폐 한장 달랑 남게 돼 보통 난감한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내가 현금을 확보해둔게 있어 여행하는 동안 여유있게 지낼수 있었다.
아내는 준비성없는 나를 나무라며 은행갈 때마다 얘기를 했는데 왜 몰랐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바가지를 박박 긁었다.
2000년 1월 1일 0시가 다가오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는데 천만 다행으로 별다른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Y2K 비축이다 뭐다 해서 준비를 잘 했었고, 일부 상점에서는 라면이 동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갑자기 사재기를 하는것 보다는 평소에 비상사태를 대비해 조금씩 조금씩 비축하는게 현명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큰돈을 들이지 않아 좋고 물건이 한꺼번에 없어지는 혼란도 일어 나지 않을 것이다.
2000년 새해를 맞으며 Y2K를 실감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준비된 대통령'이 나라를 잘 운영하듯이 어떤 위급한 사태에 부닥쳐도 국민들이 준비만 잘 한다면 이번처럼 아무일없이 지낼수 있는게 아닐까.
[방송인·국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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