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은 지금 가상전쟁 준비중 ①
기사입력 2000년 01월 03일 15시 52분
일본의 12월은 유난히 우편물이 많다.
사람관리에 철저한 일본인답게 우편물의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엽서다. 일본인들은 인맥을 하나의 재산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조차 자신의 인맥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자신이 아는 사람에 대하여 시의적절하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드와 연하엽서를 보내는 것도 인사의 한 표현이다. 좀더 세심한 사람은 연하엽서에 가족사진을 인쇄해 인사말과 함께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는 이색적인 편지가 자주 왔다. 맨처음 온 것은 내가 사는 구청으로부터 보내온 `나카노구보(中野區報)'. 구청에서 발행하는 신문이다. 평소에는 일간신문 속에 끼워져 배달됐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개인 우편함 속에 넣어져 있었다.
이상해서 펼쳐드니 1면 톱뉴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역시 컴퓨터 문제. 1면 전체를 Y2K 문제에 대한 준비정보에 할애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구성된 `나카노구 컴퓨터 2000년문제 위기관리대책본부'의 비상연락 전화번호가 나와 있었고, 전기 수도 가스 전화국의 비상연락 전화번호도 상세하게 소개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항목별로 11가지 유의사항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다.
▲`식음료수'는 보존가능한 2∼3일분, 구급상자, 전등, 라디오, 건전지를 준비할 것 ▲`저축금'은 통장에 기장,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연말연시까지의 영수증 보관, 내년 1월 이후 받을 청구서 체크할 것 ▲`현금인출'시 정월 연휴분을 충분히 찾아놓고 도난에 주의할 것 ▲`등유, 가솔린' 등은 연휴일수, 기온 등을 고려해서 충분히 비축할 것 ▲`의약품'은 가정 상비약을 다시 점검하고,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해당의사와 상담할 것 ▲`가전제품'은 각 메이커 서비스 창구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이상여부를 빨리 확인할 것 ▲`전화 및 인터넷 이용'은 가급적 자제할 것 ▲`연말연시 여행'은 현지 대사관, 영사관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여행회사, 항공사로부터 현지의 최신 정보를 수집할 것 ▲`악질상법, 사기' 등에 대비해 이상하다고 생각될 경우 재빨리 경찰이나 국민생활센터, 소비자센터 등에 상담할 것 ▲`컴퓨터 바이러스'에 주의해 낯선 파일을 열 경우에는 반드시 사전 체크를, 패스워드 관리 등의 안전 대책을 처음부터 점검할 것 ▲`중소기업'에서는 필요한 데이터의 인쇄를 통해 백업자료를 확보하고 사내긴급체제 정비 등에 관해 확인, 중소기업청의 2000년 문제에 관한 홈페이지를 꼼꼼히 체크할 것 등이었다.
흔히들 일본인들을 가리켜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철저할 줄은 정말 미처 알지 못했다.
며칠후에는 내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편지가 날아들었다. `컴퓨터 2000년문제에 대한 연말연시 준비에 대해서'라는 제목으로 무려 3페이지에 걸쳐 구청신문과 대동소이하게 준비사항을 소개했다. 아니 학교측의 편지는 더 자세했다.
식음료, 연료의 비상준비물은 물론, 컴퓨터 전화 팩스 핸드폰 전기밥통 세탁기 비디오 등에 이상이 생겼을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행동지침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더욱이 경찰청 금융감독청 경제기획청 국토청 소방청과 외무성 후생성 농림수산성 통상산업성 운수성 우정성 등 정부기관 2000년 문제 대책실의 전화번호가 나와있고, `전력회사 가스회사 전화국 등에서는 항상 비상연락망을 구축해놓고 만전을 기하고 있으니 꼭 참고하고 유의 바란다'는 학교측의 당부가 들어 있었다.
또 며칠후에는 내가 관계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단체에서 비슷한 공문이 왔다. 이 공문은 한 술 더 떴다. `비상식음료 외에도 수도물 공급이 끊길 경우를 대비해 손씻고 세수할 물을 욕조에 받아놓으라'고 했다.
이건 완전한 비상사태였다. TV뉴스를 봐도 신문을 봐도 온통 Y2K문제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드디어 일본정부가 정식으로 선언했다. 국가차원의 비상사태에 들어간다고. 그러자 일본 국민들이 즉각 반응하기 시작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