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이러쿵 저러쿵] 자존심 걸린 출연료 문제
기사입력 2000년 01월 02일 15시 36분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친한 사람에게 `돈이야기'를 꺼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야기'를 안하고 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연예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뭘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얼마예요?"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평소 친하게 지내다가 "너 얼마냐?"고 묻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바로 출연료에 관한 밀고 당기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돈이야기'를 꺼낼 때는 괜히 겸연쩍은 표정을 짓게 된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한 연기자와 한 푼이라도 깎아보려는 제작자는 대리인을 내세우게 되는데 그게 바로 매니저와 제작실장이다.
영화 `자귀모'에 이영자가 출연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영자는 다이어트를 하다가 실패해 죽은 귀신 `다이어티'를 맡았는데, 영화사로부터 출연제의를 받고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첫영화출연에 대한 부푼 꿈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과연 얼마를 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진실을 비롯한 친한 연기자들이 `개런티'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을 곁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난감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진실에게 전화를 걸어 "진실아, 영화개런티는 얼마나 달라고 해야하냐?"고 물었다.
이영자가 맡을 배역의 비중은 고려하지 않은 채 최진실은 "한 4000만원쯤 불러"라고 말했다.
다음날, 보무도 당당하게 영화사를 찾아간 이영자.
"얼마 쯤 받을 생각이냐?"는 질문에 최진실이 시킨대로 "4000만원요"라고 답했다.
영화사 관계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영자는 당시의 상황을 최진실에게 그대로 말해주었다고 한다.
"야！ 너 때문에 미쳤냐는 소리 들었잖아！ 2000만원도 많이 주는 거래！"
다음은 90년대초 중견 영화배우 P씨에 얽힌 이야기다. 지금은 최고의 스타 대우를 받는 P씨지만 당시에는 `뜨느냐, 안 뜨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있었다.
그는 당시 준비되고 있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제의를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출연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날. 영화사 사장과 충무로에 있는 A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두 사람 사이에서 그 동안 구두로 오간 출연료는 5000만원. 계약서의 내용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던 P씨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훑어보려 하자 영화사 사장은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일단 도장부터 찍고 훑어봐"라고 했다.
뭔가 미심쩍었던 P씨가 "일단 훑어보고 찍죠"라고 하자, 영화사 사장은 "너 아주 많이 컸구나. 그냥 찍으면 될 걸…. 나를 믿지 못하는 거야！"라며 화를 냈다.
이런 실랑이를 벌이다가 P씨가 슬쩍 본 계약서 상의 출연료는 `2000만원'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글:이문성 [영화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