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빈치의 눈물 (3)
기사입력 1999년 02월 22일 14시 48분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인도로 나온 영신은 피가 묻어있는 눈들을 서둘러서 자루 속에 끌어 담고 총총히 작업실로 사라졌다.
한 손에 반짝이는 면도칼을 움켜쥔 영신은 조용히 그녀의 피부를 가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해부였지만 의외로 영신은 침착하고 섬세하게 칼질을 해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몸은 적당한 근육과 하얀 지방질, 섬세한 실핏줄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골격마저 나타났다.
그렇게 그녀의 껍질을 벗기면서 동시에 영신은 도화지 위에 해부의 역순으로 그녀의 모습을 옮겨 그렸다.
먼저 하얀 도화지 위에 확실한 모습의 골격이 그려졌고, 그 위에 차근차근 뭉쳐있는 근육과 하얀 지방질….
그리고 그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느다란 혈관들까지 영신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 그렸다.
그렇게 작업을 진행하는 영신의 모습에는 마치 태초에 피조물을 창조하는 창조주의 모습처럼 엄숙함과 거룩함이 베어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어둡고 칙칙한 지하실에 지나지 않던 영신의 작업장도 이제는 전혀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는 불가사의한 공간으로 변해갔다.
"후욱…."
작업을 시작하고 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코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영신의 입에서 긴 한숨 소리가 새어나옴과 동시에 영신의 손이 문득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곤 자신의 앞에 놓여진 도화지를 쳐다보던 영신의 초췌하고 핏발이 선 눈에서 만족스러워 보이는 잔잔한 눈빛이 흘러나왔다.
영신의 앞에 널찍하게 서 있는 도화지 속에는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여인이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자신의 팔을 베고서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전체적인 몸은 변사를 당한 여인이 훌륭한 모델이 되어주었고, 으깨진 얼굴은 전적으로 영신의 상상력의 결과였다.
그림 속 여인의 우뚝 솟은 콧날과 살짝 다문 입술, 자연스럽게 흐르는 목선과 적당히 살이 오른 가슴은 당장이라도 숨을 쉬기 위해 가볍게 흔들릴 듯이 보였다.
가녀린 배를 지나서 매끄럽게 흐르는 복부의 라인에서 적당히 우거진 여성의 비밀스러운 숲과 그 아래로 쭉 뻗은 늘씬한 두 다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답다 못해 잔 소름이 돋을 정도의 감동과 흥분을 전해줬다.
다만 아직 완성을 하지 못한 듯 둥그렇게 뚫려있는 눈 부분만 제외하면 그림 속의 여인은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설 듯이 보였다.
황홀한 눈빛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 속의 여인을 바라보던 영신이 신음처럼 나직이 혼자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해 냈어.
이 여인에게서는 호흡이 느껴져.
차고 수줍은 숨소리…, 약하지만 똑똑히 들리는 맥박 소리.
모든 화가들이 꿈꿔왔지만 다빈치도 피카소도 그 어떤 거장도 결코 그려낼 수 없었던 살아있는 그림 속의 여인…, 내가 해냈어.
이 여인은 이제 전무후무한 미(美)의 화신(化身)이 될 거야. 나는 그녀를 창조해 낸 창조주이고…. 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자신이 그리고도 믿기지 않는 듯 한참을 뚫어지게 그림을 응시하며 중얼대던 영신의 입에서 거의 광기에 찬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부질없는 희망의 추악한 찌꺼기들처럼 듬성듬성 널려 있는 도시의 밤거리는, 썰물이 빠져나간 백사장처럼 온통 공허와 허무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기대감과 호기심 속에 맞이한 1999년도 어느새 3월로 접어들며 이젠 새로운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계속]
글·송강민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