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쉼표의 뉘앙스
기사입력 1999년 02월 18일 14시 52분
KBS AM 2라디오에 `이호섭, 임수민의 희망가요∼!'라는 프로가 있는데, 예쁜 여자 아나운서 임수민과, 편승엽의 불멸의 히트곡 `찬찬찬'… 등을 만든 젊은 작곡가 이호섭이 진행한다.
필자랑 무지하게 친한 이호섭이 그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자랑한다.
"에로_ 형! 우리 프로에 젊은 부부들의 사연이 많은데요, 이런 엽서가 자주와요. `서른번째 남편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걸 소개할 때마다 우리 둘은 방송사고가 날 정도로 웃어대죠!"
그게 왜 우습냐구? 잘 생각해 보시라.
`서른번째 남편의 생일'이라는 표현이 묘하다. 남편의 `30해 생일'이라는 건지, 30명의 남편 중 마지막인 `30째 남편'을 뜻하는 건지, 어디에 힘을 줘서 읽느냐에 따라 뜻이 엄청나게 달라지잖는가.
이런 건 글로 쓰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른번째, 남편의 생일'_이라고 쉼표 하나만 찍으면 되거든.
그런 의미에서 `소리' 보다 `글'이 좋을 때가 많다.
_어떤 매우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 민망한 사고가 났다.
사고 내용은 정다방의 미스정이 오토바이로 차 배달을 가다가 가로등을 들이받은 거였다.
그날 지방방송서 12시 정도 톱뉴스로 `미스정이 가로등에 부딪쳐 유방을 크게 다쳤다'는 내용이 나가자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이라며 시민들의 항의가 대단했다.
신문사에서도 이 특종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기자 "방송에서 `유방'이라 했다가 문제가 됐으니 우리는 상징적으로 `가슴'이라고만 하죠."
편집국장 "아냐! 달빛이나 월색이나… 유방이나 가슴은 결국 같은 말 아냐? 다른 표현을 생각해 보라구."
그날 실린 지방지의 기사 내용은 이랬다.
`오늘 하오 미스정이 가로등에 부딪쳐 (.)(.)이 상당히 다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