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 헝그리 스키어들의 '초절약 스키여행'
기사입력 1999년 02월 10일 14시 35분
지난 9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사무소 앞.
목욕차가 골목 어귀에 도착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며 모여들었다.
간단한 샤워시설이 설치돼있는 목욕차는 이 지역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위해 평창군이 마련한 것.
잠시 후 깔끔한 모습으로 목욕차에서 내린 이들은 스키나 스노보드를 챙겨들고 곧바로 휘닉스파크 스키장으로 향했다.
콘도에서 자고 스키장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먹기에는 주머니가 너무 가벼운, 젊은 `헝그리스키어'들의 기상천외한 `초(超)절약 스키여행'이 스키계에 화제다.
대부분 대학생이나 백수들.
그러나 드물게 중-고등학생도 끼어있다.
이들은 그룹을 지어 스키장 주변 농가의 월셋방에서 장기 투숙하고 있다.
방값은 한달에 20만원쯤으로 7∼8명이 나눠내니 부담이 없다.
월셋방에 목욕탕이 있을리 없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차가 올때까지 머리 감는 것은 물론, 세수도 않한다.
월세방에는 가스버너 등 취사도구가 있어 직접 해먹는다. 스키장에서의 점심은 초코파이나 500원짜리 약과가 고작.
양지 바른 곳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축도 있다.
식사 뒤엔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가져다 봉지커피나 코코아, 녹차를 마시는 `낭만'도 즐긴다.
대개 시즌 리프트티켓을 갖고 있는 `범털'들이지만 그마저 없는 `개털'들은 `티켓 구걸'도 서슴치 않는다.
점심때쯤 주차장을 배회하며 눈치를 살피다 일찍 스키장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티켓을 얻는 것.
`티켓 나눠쓰기'도 이들이 애용하는 방법.
`티켓 구걸'이 여의치 않아 멤버들중 일부가 티켓이 없을때 번갈아 스키를 타는 것으로 장갑에 티켓을 붙인 뒤 교대할때는 장갑만 바꾼다.
스노보더들은 2천원 안팎의 1회용 리프트 티켓이면 족하다.
하프파이프가 있는 곳까지만 리프트를 타고 그 다음부터는 100여m에 달하는 하프파이프를 계속 걸어오르는 것.
스키장측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영업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골칫덩이들이다.
하지만 정열 하나로 돌똘 뭉친 젊은이들의 `헝그리 스키'를 막을 명분도, 방법도 없다.
스키장 규정에 벗어나는 것이 있다면 `티켓 구걸'정도.
스키장의 한 관계자는 "얄밉기도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젊음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평창＝송철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