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야구클리닉] 작은 것부터 팬서비스로
기사입력 1999년 01월 31일 14시 37분
지난해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전때의 일이다.
일본 선수들이 슈퍼맨처럼 여겼던 박찬호의 위력적인 투구는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본 벤치 스스로 주눅이 들게 만들어 메이저리그 15승의 위력을 떨쳤다.
섬세한 야구의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선이 굵은 야구로 일본, 대만을 완파했는데 당시 필자의 관심은 프로 신인인 조인성(LG) 포수가 과연 어느정도 박찬호와 호흡을 잘 맞추는가에 쏠렸다.
결과적으로 국내투수와 다른 패턴과 구종을 선보인 박찬호의 투구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낸 조인성의 플레이는 박찬호가 마음놓고 던지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면이 많았다.
"아니, 포수가 투수의 공을 잘받아 주는게 정상인데 뭐 그런걸 가지고…."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박찬호의 투구 스타일은 몇가지 다른점이 있다.
첫째, 작년 배터리를 이뤘던 마이크 피아자(뉴욕메츠)도 손가락을 많이 삐일 정도로 위력적이라는 점.
투심 패스트볼은 직구 사인과 함께 사용된다.
아래로, 옆으로, 역회전으로, 때론 솟아오르기도 하는 투심 패스트볼을 포수가 알아서 잡아내려면 웬만한 집중력과 소질이 없으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없다.
둘째, 커브볼의 경우도 국내 포수들이 일단 커브사인을 투수에게 보낸후 몸동작, 손가락 동작으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커브볼, 유인하는 커브볼을 구별하여 보내고 있지만 박찬호는 포수가 두 손가락을 펴면 스트라이크, 세손가락을 펴면 유인하는 빠른 커브볼로 단순하게 구분된 점이다.
그리고 체인지업은 손가락 4개를 펴는 동작으로만 포수와 호흡을 맞추는 등 국내 투,포수들에 비해 모든 사인을 최대한 간단하게 했다.
이는 경기의 스피드업, 세련된 매너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만하다.
조인성도 적응하는데 2주일이 걸렸고 몇차례 손가락에 멍이 들었다는걸 보면 국내 포수들도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해낼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제 8개구단이 줄줄이 해외전지훈련을 떠나고 배터리들도 예년처럼 불펜에서 수없이 많은 공을 받겠지만 사인종류의 단순화로 상큼한 야구 조성에 신경을 기울이면 어떨까.
줄어든 관중을 다시 끌어 모으는데는 조그마한 것부터 `서비스 정신'이 몸에 배야 하기 때문이다.
코치와 선수, 투수와 포수의 사인수가 줄면 줄수록, 팬들은 즐거워 한다.
그리고 타자들이 생각할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본지 해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