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성] 20년 이별과 만남, 수채화같은 감각영상
기사입력 1999년 01월 17일 15시 22분
PC통신에 들어가보면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흥행요인으로 `여성감독 이정향씨의 섬세한 연출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글들이 많다.
23일 국내개봉되는 여명 주연의 `유리의 성'도 여성감독 특유의 감성으로 빚어낸 홍콩 멜로영화의 수작이다.
`유리의 성'의 장완정은 홍콩을 대표하는 여류감독. `영웅본색' 시리즈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주윤발을 예쁜(?)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변신시켰던 `가을날의 동화'가 바로 장완정 감독의 작품이었다.
장완정은 자신의 젊은 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홍콩대학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학생 기숙사, 영국전통놀이를 즐기던 운동장에서 남녀 주인공 여명과 서기가 만나는 장면은 `그 시절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란 감상을 자아낸다. 테마곡으로 사용된 `트라이 투 리멤버(Try to Remember)'는 센티멘탈리즘을 더욱 자극한다.
영화의 시작은 홍콩반환의 해를 맞이하기 전인 96년 12월 31일. 자정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의 런던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가 전복되고, 항생(여명)과 연루(서기)는 서로를 껴안은 채 죽는다.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부부가 아니었음이 밝혀지고, 영화는 각자의 자녀들에 의해 20여년전부터 시작된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첨밀밀'이란 영화도 그랬지만 `유리의 성'은 두 남녀가 오랜 세월을 두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를 장황하지 않고, 세련되게 풀어나간다.
손모양 조각상, 장미와 아스피린, 우체통 등 소품을 이용해 사랑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데선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여명은 `첨밀밀'에 이어 `유리의 성'으로 멜로스타로서의 명성을 다시 확인했다.
76년 대만 태생인 서기는 국내팬들에겐 아직 생소하지만 `보그' `엘르' `마리끌레르' 등 패션지의 모델로 유명한 홍콩스타. 장완정 감독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년의 터울을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로 서기를 캐스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감독의 의도대로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매력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