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중광] (하) '욕심을 버려야 해'
기사입력 1999년 01월 15일 14시 25분
중광스님의 저금법은 독특하다.
돈이 생기면 꼭 병에다 넣어 처마밑에 숨긴다.
은행이다, 카드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어서다.
"세상이 깜짝 놀랄 거금을 넣어둔 처마가 있어. 아무도 몰라. 어느 집인 지 궁금하지? 안 가르쳐줄래."
이자도 붙지 않는 병속의 돈은 실직자나 불우이웃들을 위해 쓰여진다.
10만원도 좋고, 50만원도 좋고 대중없이 뿌려진다.
"뿌리면 다시 들어와. 그게 돈의 이치고, 세상 이치야."
스님에게는 팬이 많아선 지 선물도 많이 들어온다.
털실로 짠 벙어리장갑이며, 스웨터며, 먹을 것이며….
그 중에서도 돈이 가장 많다.
100만원을 봉투에 넣어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돈 갖다주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돈 쓰고싶으면 자기한테 오란다.
"나는 공짜로는 안 받아. 그림도 주고 원하는 것을 다 주지. 그게 내 철학이야. 그런데 못 주는 게 한가지 있어. 내 밑의 그것을 넘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만은 안 돼."
스님은 입을 헤벌쭉 벌린 채 특유의 우거지상을 지어보이며 클클 웃었다.
끝없는 방랑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작품활동에 매달린 나머지 기가 쇠잔한 탓일까.
스님은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있었다.
눈빛과 말투에는 여전히 서릿발 같은 예리함이 남아 있지만 몸은 아니었다.
걸음걸이는 눈에 띄게 둔해져 있었고, 젓가락 끝에 매달린 김치마저 심하게 떨릴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죽음에다 부쩍 관심을 두는 듯했다.
"그냥 미친개처럼 죽어서 길거리에 버려지길 바래", "화장비는 아는 사람들이 가져오기로 했으니 언제 죽어도 상관없어", "내게 아들이 있나, 제자가 있나, 뭐가 걱정이야"….
불쑥불쑥 내뱉는 말들이 죄 그런 식이었다.
"나 죽어서 구우면 사리 많이 나올거야. 아마 한 말은 나올걸? 그런데 큰스님들하고는 다른 사리야. 큰스님들은 진신사리(眞身舍利)지만 나는 음사리(陰舍利)야 음사리. 최악의 사리지. 여자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그래."
스님은 또 한 번 촌스런 미소를 흘렸다.
그런데 왜 하필 걸레가 됐을까?
내막을 알고보면 지금껏 알려진 이유와는 사뭇 다르다.
누더기 때문도 아니고, 육두문자를 뱉고 다녀서도 아니다.
79년 `생과 사', `21세기를 말한다'와 함께 `나는 걸레'라는 시를 영국왕립 아시아학회에 영문으로 발표하면서 본의 아니게 걸레가 됐다.
거기에다 몸에 걸친 `걸레'가 똑 떨어지게 궁합을 맞추니 싫어도 도리가 없었다.
그 백담사 걸레가 속세를 향해 한마디 내뱉았다.
"세상에는 걸레만도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욕심을 버려야 해. 욕심을!" [끝]
[백담사=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