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박성수 초단 ●이계훈 3단
기사입력 1998년 01월 09일 13시 24분
총보(1∼165)＝이 3단의 관록과 뒷심이 엮어낸 승국이었다. 바꿔 말하면 박 초단으로선 다 잡았던 대어를 뒷심 부족으로 실족한 아까웠던 한판이었던 것.
초반 흑 11로 12의 곳에 지키지 않아 백 12로 뛰어 들면서 혼전의 양상. 그런데 잘 나가던 백이 38이라는 `보리선수'를 행사하는 바람에 국면은 흑 쪽으로 기울게 된다.
어차피 흑 41 끊김이 예정된 수순이었다면, 백은 38, 흑 39를 교환하지 않았어야 `가'로 막아 근거를 확보하는 수가 선수로 들어 중앙전을 부담없이 풀어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흑은 49．63의 연속 득점으로 67까지 국면이 잘 풀려 나갔는데 백 68 때 69 붙임수가 엉뚱했다. 국후 이 3단의 표현을 빌면 `경솔'한 수라고나 할까. 추측컨대 필자의 생각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 수라 보여진다.
프로 18년의 대선배로서 이제 겨우 수습의 딱지를 뗀 프로 초년생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그것은 프로라면 누구나 갖는 공통된 선배의 `위상심리'다. 그러나 간혹 그것이 오히려 판을 그르치는 결정적 요인이 될 뿐아니라 프로로선 가져서는 안될 `경적(輕敵)'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니 조심할 일이다.
백 70의 반격에 흑은 73까지 물러설 수밖에 없다. 69는 한껏 보태준 수에 불과했던 것. `혼자 두었어도 이렇게는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 3단의 국후 소감은 얼마나 흑이 최악의 결과인지를 대변한다 하겠다. 상변에서 당한 심적 부담은 흑 89에서도 이어진다. 이 수론 무엇보다 좌변(125 또는 `나')쪽을 지켜두는 것이 급선무였다.
백 92의 날카로운 추궁에 좌변은 풍비박산이 나고 급기야 백 106．108로 중앙 흑 두점마저 뜯겨서는 백의 우세가 확실해졌다.
그러나 정작 승부는 지금부터. 과연 이 우세를 끝까지 유지해나갈 수 있는 뒷심을 백으로선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145의 곳까지 쳐들어가지 않은 백 144에 이어 153의 곳에 뻗지 않은 백 150으로 백은 다 거머쥐었던 승리를 흑에 헌납하고 만 것이다.
엎치락 뒤치락, 끝까지 승부를 점칠 수 없는 혼전이었으나 끝내 행운의 여신은 `관록'쪽으로 손을 들어 주었다.
165수 다음 줄임, 흑 불계승.
[해설．김재구 8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