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6)
기사입력 1998년 01월 09일 13시 22분
"맨 마지막 배부터 가라앉혀야 된다."
보령부사 안도창이 말총 채찍으로 앞쪽 바다를 가리켰다. 수평선에는 짙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 어느덧 저녁 무렵이다.
"놈들이 뭍으로 오를때까지 기다릴건 없다. 배들이 방파제 안으로 들어오면 곧장 화전을 쏘아라."
벌써 몇번째인지도 모를 지시를 받은 무장들이 제각기 갖가지의 표정으로 견디어내고 있었다.
안도창의 주위에 둘러선 무장들은 십여인이 되었는데 모두 보령부사 속령의 진장과 부장이었다.
그들이 선곳은 포구가 한눈에 보이는 해안의 바위 위였다. 이미 진의 배치도 마친 참이라 군사들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자, 그럼 각 진으로 돌아가도록."
안도창이 작전지시를 끝내자 무장들은 제각기 몸을 돌렸다. 바위를 내려와 모래사장을 걷던 석탑진장 유박이 담서진장 박태이를 바라보았다."
"부사가 어젯밤 왜구 수급 오십여개를 베어 소금통에 넣었다면서?"
주위를 둘러본 박태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무과에 같은해 등과한 친구 사이였다.
"그렇다더군. 왜검도 스무자루나 전리품으로 얻었다니까 부사가 오늘 왜선들을 쫓기만 해도 될걸세. 전공은 이미 세웠으니까."
"죽은 놈의 목을 떼었다고 하더구만."
"고덕산의 화적떼가 세운 전공이야. 이미 우리 고을에도 소문이 났어."
박태이가 가래침을 긁어 뱉었다.
"어디, 오늘밤 왜선이 온다면 부사의 용력을 한번 보세나 그려."
어둠은 금방 내려덮여졌다. 우선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의 구분이 없어지더니 바닷물색도 짙게 변하면서 이제 모래사장을 핥는 흰 물결끝만 보였다.
주위는 또한 짙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보령부사가 이끄는 450명의 군사가 빈틈없이 매복하고 있는 것이다. 장명포의 지형은 마치 말굽형이어서 오목한 안쪽의 좌우가 바다쪽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안도창은 부사 직속의 이백 군사를 두명의 부장 지휘하에 해안의 돌출부분에 박았고 나머지 진장들은 정면의 해안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뒤쪽의 바위 위에 본진을 치고 이십여명의 군사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그가 옆에선 판관을 바라보았다.
"왜선이 불을 밝히고 올까?"
"소인은 모르겠소이다."
긴장한 판관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떠 있었으므로 안도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육척 장신의 호남이다.
"왜선 다섯척이면 근래엔 없었던 대규모 선단이다. 이곳이 배를 대기는 적당하나 근처에 부유한 고을이 없고 백성도 많지 않은데, 괴이하다."
혼잣소리처럼 말한 그가 칠흑같이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만척은 이제까지 실없는 소리를 해본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김준 휘하의 별장 벼슬에 있다가 윤의충과 함께 이탈한 역적의 무리라는 것도 안도창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영내인 고덕산에 박혀있는 그를 소탕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역부족이다.
그러다가 오히려 이쪽이 당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서로 묵계를 맺은 것이었다.
아래쪽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군사 하나가 서둘러 기어 올라왔다.
"부사나리, 왜선이 오는것 같소이다."
그의 목소리가 주위를 울렸고 안도창은 걸상에서 일어섰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