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석유버너가 최고야!
기사입력 1998년 01월 07일 14시 41분
`석유버너를 어디다 뒀더라…?'
휘발유－가스버너에 밀려 골방에 쳐박혀 있던 석유버너가 IMF한파 덕분에 다시 빛을 보게됐다.
환율폭등으로 기름값이 가파르게 치솟자 유류중 가장 값이 싼 등유를 쓰는 석유버너가 산악인 등 야외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것.
연료 가격으로 따지자면 가스가 가장 비싸고 그 다음이 휘발유로, 석유는 가장 쌌다. 기름값이 금값인 요즘 그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휘발유버너용 정제휘발유가 0.5ℓ에 2천원을 호가하는데 반해 석유는 약 350원으로 6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열량의 가스와 비교하자면 10분의1도 채 안된다.
동대문시장 중고버너 가게에도 전에 없이 석유버너를 사러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석유버너는 한때 산악인들에게 재산목록 제1호의 보물이었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산의 춥고 축축한 텐트속에서 때로는 난방용으로 때로는 떡라면이나 커피를 끓이는 조리용으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쓰고나면 행여 녹이 슬새라 광약으로 윤이 나게 닦아 잘 모셔두었다.
그래서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버너 좀 쓰자는 말도 못 꺼냈었다.
그러던 석유버너가 쇠락한 것은 작동의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쓰기전에 알코올로 예열을 해야하는데다 가끔씩 노즐(연료가 분출되는 작은 구멍)이 막히면 일일이 뚫어줘야 했던 것.
예열 없이 바로 불이 붙고 화력 조절도 자유자재로 되는 휘발유버너(콜맨)의 등장에 이어 펌프질이 필요없는 가스버너가 일반화되자 석유버너는 졸지에 설자리를 잃었다.
주머니가 가벼워 신형버너를 살 수 없었던 대학교 산악부원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 90년을 고비로 골동품이 되버린 석유버너.
휘발유버너나 가스버너에 비해 둔하고 못생겼지만 어딘지 믿음직스런 석유버너의 부활은 IMF시대가 그리는 또 하나의 풍속도가 되고 있다.
[송철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