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3)
기사입력 1998년 01월 06일 13시 32분
"저기 옵니다."
깊은 밤이다. 별빛만 반짝이고 있었으나 어둠에 익숙해진 만척의 눈에도 앞쪽에서 흔들리는 인영이 보였다. 그림자는 셋이었다.
"저놈들의 척후인 모양이오."
옆에 붙어선 사내는 만척의 심복인 강쇠였다. 산길의 나무 둥치에 붙어선 그들의 앞으로 그림자가 다가왔다.
이젠 낮게 지껄이는 목소리도 들렸는데 왜말이다. 왜적인 것이다. 시오리 안쪽의 만동리를 약탈하고 왜적들은 돌아가는 길이었다.
"척후는 그대로 보내라."
만척이 낮게 말하자 강쇠가 얼른 몸을 돌렸다. 산길의 양옆에 매복한 부하들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빌어먹을 별초군놈들."
만척이 잇사이로 말했다. 만동리 바로 위쪽에 별초군의 진이 있어고 진장 휘하에 오십명 가까운 별초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적들이 습격해오자 별초군은 산산이 흩어졌다.
칼한번 맞대지 않고 도주한 것이다. 왜적 세명이 바로 아래쪽 길을 지나갔으므로 만척은 숨을 죽였다. 그들은 십리 뒤쪽의 장명포에 정박한 왜선으로 가는 것이다.
그들이 멀어지자 강쇠가 옆으로 다가왔다.
"두령님, 왜적은 백성들을 끌고 간다고 하오."
"그럴테지."
잡아서 노예로 팔테니. 백성들도 재물인 것이다. 앞쪽에서 소음이 들려 왔으므로 그들은 긴장했다.
울음소리와 고함등이 뒤섞여 있었는데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제일 컸다.
"앞쪽은 터 놓아라."
허리에 찬 칼을 뽑으며 만척이 말했다.
"십리길이다. 차근차근 쫓아가며 몰살을 시킨다."
백여명이 넘는 무리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는데 포로로 잡힌 백성은 반쯤 되었다. 마치 짐승처럼 묶여 끌려 오면서 여인들은 구슬피 운다.
"쳐라！"
만척이 벽력같이 외치면서 무리속으로 뛰어 들었다.
"백성들은 그자리에 앉아라！"
불시에 기습을 받은 왜적들이 제각기 메고 끼었던 약탈품을 내던지며 응전했으나 기세가 반이나 꺾여져 있었다.
만척은 칼을 날려 왜적 셋을 순식간에 베었다.
"모두 죽여라！"
길의 양쪽에서 덮쳐온 그의 부하들은 모두 백여인이다. 고함과 비명소리가 어두운 산길을 메웠는데 승부는 금방 났다.
왜적들은 비워진 앞쪽길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부하들이 뒤를 쫓았다.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이쪽 지리는 눈감고도 다닐수 있는 고덕산의 화적단이다. 함성을 지르면서 부하들은 왜적의 등에 칼을 날렸다.
두식경쯤이 지난 다음 만척은 바닷가의 바위 위에 서 있었다.
왜선 두척은 황급히 돛을 올려 바다로 나갔는데 뭍에 내렸던 왜적은 한사람도 싣지 못했다.
대부분이 죽었고 산에 숨은 잔당 몇명도 날이 밝으면 잡혀 죽을 것이었다. 강쇠가 바위 위로 올라왔다.
"두령, 고려말을 아는 왜적을 잡았소."
그는 목에 밧줄을 맨 왜적 한사람을 끌고 있었다.
"이놈이 살려만 주면 두령께 말씀 드릴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려."
쓴웃음을 지은 만척이 사내를 훑어 보았다. 동녘이 밝아지고 있어서 사내의 얼굴도 조금 보였다.
"허튼수작 하면 당장에 죽일테다."
"아니올시다. 내일 일본배 다섯척이 영당포에 닿소이다."
사내가 조그만 눈을 분주하게 굴리며 유창한 고려말로 말했다.
"영주의 직속 무장이 타고 있소이다."
X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