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비화X파일] (1)가짜 개그맨
기사입력 1998년 01월 03일 14시 38분
개그맨을 사칭해 혼인빙자 간음과 금품 갈취를 한 플레이보이가 지난 연말 서울 강동경찰서에 체포됐다.
지금까지 사법연수원생이나 의사, 고시준비생을 사칭해 순진한 여자들의 몸과 돈을 갈취한 사례는 많았지만 연예인, 그것도 개그맨을 사칭한 사기사건은 처음 있는 일.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얼굴을 무기로 대전과 서울을 무대로 여성들을 농락한 가짜 개그맨의 범죄행각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누나? 나야. 별 일 없으면 오늘 저녁에 방송국 직원이랑 소개팅 할래? 집에서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낫잖아."
휴일을 맞아 자취집에서 쉬던 한정화(24. 가명)는 평소 알고지내던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96년 11월 중순 대전 시내의 한 커피숍.
후배와 함께 나온 유상철(31. 가명)은 1@82의 키에 얼굴도 잘 생긴 편이었다.
이벤트 회사에서 일한다는 유상철은 가끔 방송국 코미디에도 찬조 출연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후배가 자리를 뜬 지 1시간이나 됐을까.
"사촌누나가 운영하는 단란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함께 가시죠."
유상철은 단란주점에 들어서자 불행했던 어린시절을 고백했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 모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부채 8천만원을 갚느라 몇년동안 안해본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돈도 다 갚고 그런대로 살만해요."
유상철은 불행했던 과거에 이어 희망찬 내일을 펼쳐보이며 한정화의 마음을 흔들었다.
"D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지만 그래도 내년이면 정식 개그맨으로 등록이 됩니다."
긴 독백은 청혼으로 막을 내렸다.
한정화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받아본 청혼에 혼란스러울만큼 흐트러졌다.
"우리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요. 이제는 행복할 일만 남았습니다."
단란주점 영업이 끝나자 유상철은 다시 한번 청혼했다.
유상철은 문을 나서며 "곧 결혼할텐데 오늘 밤 헤어져야할 이유가 있느냐"며 한정화를 가까운 여관으로 이끌었다.
급속도로 친해진 두사람은 이후 1주일에 2번꼴로 만나 서로의 자취집을 오가며 관계를 이어왔다.
유상철은 만난 지 1주일도 안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스탕 등 옷을 산다며 카드를 빌려가 300만원을 쓰는가 하면, 이혼한 외삼촌의 위자료로 300만원을 꿔가기도 했다.
생활비조로 50만원씩 가져간 것도 10여회.
월세방 보증금으로 500만원을 빌려가기도 했고, 중고차를 사면서 보증을 부탁한 뒤 돈을 내지 않아 대신 돈을 내준 것도 4차례나 됐다.
한정화는 결혼할 남자와 돈 문제로 다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매번 돈을 건네줬다.
그러나 유상철이 가져간 돈이 1천463만원으로 불어나자 돈을 갚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통고를 하게 됐고 이 말을 들은 유상철이 행방을 감춘 뒤 비로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