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대장군(33)

기사입력 1998년 01월 03일 14시 02분

그날밤 윤의충은 침소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하늘의 영롱한 별자리가 보였고 밤바람은 부드러웠다.

방안에는 손님이 한사람 마주앉아 있었는데 향궁의 종태사였다.

가슴까지 닿는 흰수염을 쓸며 그가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소인의 입으로 이런말을 하는것이 부자연 스럽기는 하나 쿠빌라이는 영걸입니다. 가히 천하에 군림할 제왕의 재목이지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미 천하는 장악되어 갑니다. 대세를 거역 할수는 없습니다."

종태사는 쿠빌라이의 사신 자다란과 맞추어 개원성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향비의 사부이자 보호자이며 곧 하이도의 사람이다. 더욱이 그는 향비와 함께 하이도의 영지에 머물다가 온것이다.

종태사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윤의충을 바라다보았다.

"쿠빌라이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관작을 받은 후에는 배신할 인물이 아니라는것까지 알고 있을 겁니다."

문득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고려군과 장군을 부딪치게 만든것을 보십시오. 쿠빌라이는 장군의 약점까지 파악하고 있소이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종태사는 나이가 70이 넘은데다가 윤의충의 사부이기도 하다. 윤의충의 시선을 받은 그가 길게 숨을 뱉었다.

"쿠빌라이는 거절할수 없는 제의를 해왔소이다. 장군 휘하의 여진군은 땅과 재물, 관직을 얻게 되었으니 만족하고 있소이다. 장군만 받아들이신다면 제국의 동북부는 일시 평안해질 것이오."

"…. "

"또한 고려국은 전란에 휩싸이지 않게 될터이니 백성들이 안심하겠지요."

윤의충이 눈썹을 치켜떴다.

"고려왕 왕식과 임연을 위한 일도 되겠지요. 썩어빠진 강화섬 안의 도당들까지."

그러자 피해를 입는쪽은 내륙에 내쳐진 백성들과 명을 따르는 군사들 뿐이다. 한동안 방안에 흐르던 정적을 종태사가 깼다.

"장군, 쿠빌라이의 제의를 받아 들이십시오. 쿠빌라이가 장군께 굽혔듯이 장군도 굽혀 그것을 받으십시오."

"…. "
"기회는 있는 법입니다."

퍼뜩 시선을 든 윤의충이 종태사를 바라보았다.

"사부님, 기회라면 소인께 어떤 기회를 말씀 하십니까?"

"그건 나도 아직 모릅니다."

정색한 종태사가 머리를 저었다.

"난세는 영웅을 만들어 내지요. 그리고 본래 영웅은 그릇의 크기를 잴수가 없는 법입니다."

"…. "

"장군은 아직 젊소이다. 흐르는 물줄기를 잠시 타는것도 대망(大望)을 만드는데 크게 도움이 될것이오."

다음날 아침, 정청에서 윤의충은 자다란으로 부터 관복과 직첩을 받았다. 주위에 늘어선 여진족 장수들은 대부분 얼굴에 희색을 띠었는데, 성안의 분위기는 더욱 들떴다.


몽골제국을 굴복 시킨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였을 것이다. 몽골대군이 밀려올것으로 예상했던 군사들과 백성들이다.

그시각에 남문으로 대여섯기의 기마무사가 빠져나갔다. 그들은 모두 어두운 얼굴이었는데 선두에 선 무사는 전창이다.

성밖으로 나온 그가 문득 옆쪽의 황야를 바라보았다. 그는 남송인인 것이다.

"표걸, 네 죽음이 헛되었느냐?"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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