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대장군(32)

기사입력 1998년 01월 02일 14시 58분

이십여일 후인 4월초 개원성의 정청에 앉은 윤의충은 앞에 선 관리들을 향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중앙에 선 관리는 몽골제국의 예부시랑 자다란이다.

"나에게 정동행성병마절도사겸 대장군을 봉한다고?"

"그렇소이다. 폐하께선 이미 구원(舊怨)을 잊으셨소."

예부시랑 자다란은 몽골인으로 고관이다. 그가 은근한 시선으로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몽골제국은 곧 천하에 군림하게될 것이오. 천하의 대업이 곧 대의(大義)일 터이니 장군의 뜻과도 일치될 것이외다."

"내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윤의충의 표정도 잔잔해서 주위에 둘러선 장수들은 그저 숨만 죽였다. 자다란이 머리를 끄덕였다.

"폐하께선 장군이 두가지의 뜻을 품고 있다고 보셨소. 그 첫째는 대흉(大凶)한 뜻으로 몽골제국의 동북방에 이민족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흉(小凶)한 뜻으로 오고타이 가계의 하이도와 연합하여 동북방의 맹주(盟主)가 되는것이라 하셨소."

"그것은 몽골제국의 흉사(凶事)가 되겠지."

"또한 폐하께선 장군께 두가지의 방법을 제시 하셨소. 그 첫째가 대길(大吉)한 방법으로 몽골제국의 정동행성병마절도사가 되어 고려국을 안돈 시키는 일이며."

"…. "

"둘째가 소길(小吉)한 방법으로 병력을 끌고 북방으로 이동하는 것이오. 이것은 폐하께서 소인(小人)이 취할 방법이라고 주석을 다셨소이다."

"나는 이미 군세 오만이다. 카리바누의 기병단이 장성을 넘어 온다고 해도 요동땅의 거름으로 만들어 줄수가 있다."

"고려왕 왕식은 별초군 이만을 모아 북상하겠다는 조서를 보내왔소."

순간 윤의충이 퍼뜩 눈을 치켜떴다. 별초군 이만이면 아마 각도에 흩어진 정예병을 모두 모아야 될것이다. 청안에는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장수들도 입을 열지 않았고 윤의충은 굳게 입을 다물고는 아예 시선을 바깥 하늘에 주었다.

자다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장군, 고려군을 이끌고 올 장수는 전(前)진주목사 안재연이오."

"에에익！"

그순간 청의 아래쪽에서 외침소리가 들리더니 땅이 울렸다. 장수들 사이에 있던 구광이 분한 나머지 고함과 함께 발로 땅을 구른 것이다.

그러나 주위 장수들의 눈짓을 받은 구광은 더이상 나서지 않았다. 이윽고 윤의충이 입을 떼었다.

"그렇다면 내가 몽골군 내부의 여진군을 복속 시킨것처럼 고려군도 투항해올 것이다."

"고려왕 왕식이나 교정별감 임연이 둔한자가 아니오. 장수들은 물론 군사들까지 인질을 잡고있을 것이외다."

"이 기회에 내가 고려국을 병탄하여 몽골제국의 동북방을 떼어 내겠다."

눈을 치켜뜬 윤의충의 말에 아래쪽의 장수들이 일제히 고함을 쳤다. 청안은 한동안 기세를 올린 장수들의 외침소리에 묻혀졌다.

쿠빌라이의 이런 제의는 일단 그들의 사기를 올려 놓은 것이다.

윤의충이 손을 들자 청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예부시랑 자다란은 노련한 인물이다. 차분한 그의 시선을 받는 윤의충이 입을 열었다.

"시랑, 먼길을 오셨으니 객사에서 쉬도록 하시오."

이제 예의를 갖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