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아저씨 직업은 덤프트럭 기사
기사입력 1997년 01월 04일 13시 54분
에로비안나이트 필자는 고향이 시골이다. 쉬운 말로 `촌놈'이어서 1년에 두어차례는 꼭 전쟁을 치른다. 시골 사람들만이 치르는 전쟁이 어디 따로 있느냐구? 있으니까 있다고 했다. 이름하여 귀성 전쟁이다. 이번 신정 연휴 때도 그 `전쟁'을 겪었는데 매번 놀라운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 기차나 시외버스는 탄력있는 고무로 만들었을까. 이를테면 50명 정원 칸에도 무려 3배인 150명을 태우고 제 속도로 잘만 달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 안에는 입석좌석이 따로 없다. 엉키고 꼬이고 밀리고 말리고 비틀리고 뒤틀리다 보면 두 발이 공중에 붕 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귀성차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즐거움은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얼굴들을 보면서 뭐하는 사람인지. 고향이 어딘지 가늠해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는 것이다. 필자의 직접 경험 말고 옆자리서 보고 들은 것을 한가지 적는다. 역시 송곳 하나도 세울 수 없는 유식한 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꽉 찬 만원 시외버스 안. 점잖게 생긴 남자가 숨이 막히다는 듯 괴로워하는 예쁜 아가씨에게 나직하게 말을 건넨다. "아가씨, 이상하게 생각말고 내 무릎에라도 않으세요" 사람이 고통스럽다 보면 대범해 지는 것일까? 잠시 머뭇거리던 아가씨는 "그럼, 오빠나 삼촌처럼 생각하고…." 얼마 정도 지나자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아가씬 미용사지요?" "어머나！ 어떻게 아셨어요?" "머리도 세련되고 손톱손질도 예쁘고 피부도 곱고 향내도 좋아요." "아저씨는 덤프트럭 기사 아니세요?" "아니 내 직업을 어떻게?"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남자에게 여자가 대답했다. "아저씨 무릎에 앉고 나서 곧 뭔가가 천천히 절 들어 올리는 걸 느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