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축제-죽음은 또다른 시작
기사입력 1996년 05월 29일 15시 05분
**임권택감독 윤회적 삶 영상언어로 표현 **장례식서 가족갈등해소 새출발과정 그려 "장례식을 통해서 죽음으로 종결되는 앞사람의 전 삶이 남은 사람들의 계속되는 삶에 드리우는 의미들을 살펴보고, 날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은 과연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 임권택 감독은 `축제'(태흥영화사 제작)의 영화작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 연출의 변(辯)을 밝혔다.
그리고 이제 임 감독은 이 약속을 완성된 영화 `축제'를 통해 지키려 한다.
이승에서의 모든 삶을 마치고 떠나가는 이를 보내는 의식, 장례식. 일견 회한이 가득한 자리이건만 임 감독은 이를 축제의 마당으로 펼쳐내보인다.
한동안 를 앓아오던 팔순 노모의 죽음 앞에 모인 가족들. 감당키 어려운 존재를 보내며 그 홀가분한 기분에 내심 호상이라고 자위하는 이 자리를 임 감독은 윤회적 삶의 관점에서 `죽음이란 또다른 시작'임을 영상언어로 강변한다.
시골 노모의 부음을 듣고 남도의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작가 준섭(). 각지에서 몰려드는 가족들과 장례준비로 부산한 이웃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축제'의 배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호상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13년전 집을 나갔던 준섭의 이복조카 용순(오정해)의 등장으로 상가엔 일순 파문이 인다.
노모의 죽음을 놓고 조금씩 표출되던 가족간의 갈등도 용순의 존재를 빌미로 더욱 노골화된다.
이때부터 임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가신 노모의 지혜를 빌어 갈등을 치유해나간다. 시끌벅적한 상가의 풍경 사이사이에 삽입된 동화- 할머니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작아지고 그 나이와 함께 할머니의 지혜를 받으면서 자라나는 어린이의 이야기-로 임 감독은 메시지를 전한다.
가족을 팔아 글을 쓴다며 비난해왔던 준섭의 동화책을 읽어내리던 용순의 눈가에 눈물이 반짝이고, 사흘간 계속된 장례를 모두 마치고나서 용순까지 `프레임 인'되어 찍히는 가족사진으로 `축제'는 비로소 끝이 난다.
기승전결의 이야기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마치 한편의 인생드라마를 보는 듯 느껴지는 것은 정연한 질서를 갖춘 임 감독 특유의 뚝심있는 영상미 때문.
또 미세한 느낌조차 붙잡아두었던 `한'의 `서편제'와는 사뭇 다른 정서, 화해와 효도라는 굵직한 감성과 이성으로 영화를 축조해낸 점도 `축제'를 전혀 새로운 형식의 영화로 평가받게 한다.
몇몇의 배우에게 특별히 무게가 주어지진 않았지만 오정해 정경순 트리오의 열연은 그야말로 임 감독의 조련과 맞물려 빛나고, 임 감독의 의중을 족집게처럼 헤아리는 의 절묘한 음악도 `축제'의 감동을 덧칠하는데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