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 (19)
기사입력 1996년 05월 28일 19시 51분
"그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놀랍게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인물은 동방산장의 장주 이효봉이었다.
그의 등장은 실로 의외였다.
장내의 인물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누구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맡큼 이효봉의 몸놀림은 절묘했다.
천도서생 방일비가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심양의 이장주가 아니십니까?"
이효봉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맞아."
"이게 얼마만에 뵙는 겁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린 피차 길이 다르거늘."
방일비는 무안을 당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심기가 깊은 까닭이다.
"하하하, 여전하시군요."
이효봉은 그를 상관하지 않고 남궁도를 직시했다.
남궁도는 목전의 노인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고 있던 차 였다. 이효봉이 중얼거렸다.
"자네로군."
"넷?"
이효봉은 부드러운 눈길로 남궁도의 전신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좋은 골격을 지니고 있어."
의아해하는 남궁도에게 방일비가 거들었다.
"이장주님은 동방산장의 장주이시오. 맹주님과는 각별한 친분을 갖고 계시죠."
이효봉이 코방귀를 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각별한 사이는 아니지."
남궁도가 벌떡 일어나며 포권지례를 취했다.
"무림말학 남궁도가 노선배님을 뵈옵니다."
그를 대하는 이효봉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마치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얼굴과 같이 자애로웠다.
"비사를 알고 싶다고 했나? 내가 말해주지. 과거 중무련에서는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황금사원을 기습했다네.
사대문파가 모조리 가담했지. 그들은 황금사원의 원주와 그 일가친척을 모조리 도륙했어.
희생자의 수는 칠십여명에 달했고 생존자는 불과 다섯이었어."
남궁도의 일신이 부르르 경련했다.
이 정의로운 사내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무림연맹에서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을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남궁도는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효봉을 통해서 사실이 입증되자 매우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모종의 목적이란 게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것이었기에 한 문파를 몰살 시킬 수 있었던 겁니까?"
이효봉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오직 중무련의 맹주만이 알고 있을 뿐이지."
벽천무상검 남궁도. 오직 정의만을 위해 살겠노라 맹세 했던 이 사내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