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쓰는 ML메시지]
기사입력 1996년 05월 28일 14시 59분
**'보크 통과의례' 루키는 힘들다 94년 처음 미국에 와서 참가한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나는 한동안 보크 때문에 곤욕을 치렀었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자꾸 보크 판정이 계속되니까 도무지 피칭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신경이 써서 던지는데도 심판이 보크로 판정을 하니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당시 나는 애송이 투수인데다 말도 전혀 통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올시즌 본격적으로 에서 공을 던지게 되면서 그것이 `루키(Rookie)' 선수가 겪어야하는 한 과정임을 깨달았다.
는 물론 각 프로 리그의 초년병들을 미국에서는 루키라고 부른다.
에서는 시즌 개막시 타자의 경우 130타석 미만, 투수의 경우 50이닝 미만의 일천한 경험에 불과한 선수를 루키로 규정한다.
그리고 시즌 개막때부터 8월31일 사이에 45일 이상 명단에 올라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더이상 루키가 아니다.
그런데 는 루키들에 대해서 상당히 엄격하고 까다롭게 군다.
루키 투수들이 보크가 많은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보크뿐 아니라 볼 카운트를 잡을 때도 루키는 아주 불리하다.
애매한 공이면 루키의 경우 10개중 9개는 볼로 판정이 내려진다.
지난 5월4일 피츠버그와 원정경기에서는 주심 에드 라푸아노가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아 아주 고생했다.
1회초 3번 타자 제프 킹과 투스트라이크 투볼에서 던진 직구는 분명히 스트라이크였고 나는 자신있게 마운드를 벗어나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심판이 볼을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로 라푸아노 심판은 경기 내내 아주 인색한 판정을 내렸는데, 간신히 1승을 추가한 후 투수 코치 윌라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루키는 절대 겸손해야하며 심판에 앞서 자신이 먼저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는 따위의 행동을 하면 미움을 사기에 딱 좋다는 것.
루키가 너무 잘하면 를 무시하고 건방져 진다는 심판들의 생각 때문이란다.
그래서 노장 타자들과 만나면 루키들의 차이는 분명하다.
같이 농담하고 욕도하고 어울리지만 가만히 보면 위계 질서가 확실하다.
배팅 연습을 할 때도 루키나 신인들은 가장 먼저 외야로 달려나가 공들을 잡아주어야 한다.
연습도중 운동장에 깔린 공들을 주워 모을 때도 루키들과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배트 보이들이 재빨리 공을 모아다 코치에게 주어야 한다.
나의 진정한 루키 시즌도 벌써 4분의 1 이상이 지나갔다.
아까운 루키 시즌이 다 가기 전에 좀 더 확실한 활약을 보일 기회가 주어져야 할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