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 ⑬
기사입력 1996년 05월 22일 15시 04분
그녀는 싸늘한 음성으로 말한다.
"원하고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소야를 죽이는 사람을 난 증오해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분명 이소야를 죽이고자 하지 않았던가. 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나 역시도 그와 마주치게 되면 생사의 혈전을 전개하리라 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어." 모용추가 서늘한 눈으로 사원을 바라 보았다.
"만나긴 만났군요."
"그렇소."
모용추의 눈빛이 사납게 빛났다.
"승부는?"
사원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나의 승리였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있었소. 그런 사람을 상대로 한 승리라는 건 얼마나 가치가 없는 것인지 당신도 잘 알거요. 난 내가 무슨 짓을 하기 위해 강호를 종횡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소." 모용추의 목소리가 뾰족하게 트집을 잡았다.
"그래서 그를 죽이지 않았나요?"
"그럴 수가 없었소. 그는 이미 패자 그대로였고 폐인이었소."
"동방산장의 이소야가 그렇게 무기력하게 보였단 말인가요?"
"내가 본 그는 목엽이란 떠돌이였소."
어이없는 얼굴의 모용추.
"당신은 이제 내 몸에도 관심이 없어진 모양이군요."
"그런건 아니오."
모용추는 사원의 코 앞에 자신의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라면 당신은 어서 그를 추적하여 그를 완전히 제거하도록 하세요. 그래야 당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요." 모용추의 말에 사원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난 이제 다시는 이소야와 대결할 생각이 없소."
"날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사원은 모용추를 천천히 올려다 본다.
언제 보아도 절염한 미태를 지니고 있는 여인이다.
눈과 입…콧날의 선이며 긴 목덜미의 우아함까지 어디 한 군데도 조화가 되지 않는 부분이 없다. "그런건 아니오. 단지 이소야에 관해서는 흥미가 없다는 것이오. 정 이소야를 죽이기 원한다면…그래서 날 증오하고 싶다면 당신은 나와 동침해 주시오." 모용추는 망설임을 모른다.
"좋아요. 우리 동침해요."
그녀의 수락이 너무 쉬웠으므로 오히려 사원이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진심이오?"
모용추는 즉시 앞장선다.
"기방에서는 싫으니 내 처소로 가야해요."
사원은 마치 홀린 듯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선다. 아귀가 어느 구석에선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구경은 목숨을 담보로 해서라도 반드시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