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 ⑩

기사입력 1996년 05월 18일 14시 48분


아귀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렇소. 난 일찍이 무현공자라는 분의 인품에 감동 받은 적이 있었소. 바로 그가 볼모로 잡혀 있는 동방왕가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기꺼이 제왕의 도라 불리는 제왕학을 넘겨준 것이오." 사원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석부용이 제왕학을 원했다면서?"

아귀는 당시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대는 아귀.

그러나 사원이 알고 싶은 것은 오직 이소야의 생사였다.

"이소야는 어찌 된 것이냐?"

"그는 달아났소."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는 것이냐?"

"모르오. 하지만 제왕의 도를 움켜쥐는 눈빛은 평소와 다르게 보였소. 그는 심양으로 떠난게 분명하오." 사원의 경직됐던 표정이 풀렸다.

"다행이군."

아귀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염정선라 석부용은 궁금하지 않소?"

"그녀가 이소야를 쉽사리 포기 했을 리가 없을텐데….?"

아귀는 음흉하게 웃었다.

"석부용은 신비한 사냥꾼에게 당했소."

사원은 흠칫 놀란다.

"우연히 합석했던 아라라는 북경의 사냥꾼 말이냐?"

"그렇소. 그녀의 궁술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달해 있었소. 난 그토록 절륜하고 극맹한 수법을 본 적이 없었소." 사원은 입이 떡 벌어졌다. 염정선라 석부용의 무공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격에 숨을 거둔 것이냐?"

"아니오. 화살 하나가 그녀의 왼쪽 눈을 관통했소."

"아!"

아귀는 사악하게 웃었다.

"흐흐흐. 이제 그녀는 함부로 사람을 업신 여기지는 못할거요. 그리고 사내들도 그녀의 요염함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거요. 한쪽 눈알이 빠져버린 석부용을 상대로 어느 사내가 욕정을 느낄 것이며, 그런 눈으로 누굴 유혹할 수 있겠습니까. 사내들과 음탕한 짓을 일삼을 수 없으니 그녀는 끝장난 게 아니고 무엇이겠소." 아귀는 매우 고소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사원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 원인은 석부용 때문이 아니었다. 진작부터 그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지 못하게 했던 것은 바로 상관옥이었다. 인옥이라 불리던 동방의 여인.

그녀는 기이하게도 다른 여자를 품을 때마다 눈앞에 어른거려 사원을 괴롭혔다. 강호의 무림인에게 있어서 술과 죽음과 여자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상관옥은 다르다. 그것이 사원으로 하여금 견디지 못하게 하는 이유라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원은 밤새도록 술을 퍼마셨고 아귀와 기녀는 그옆에서 졸며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