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 ①
기사입력 1996년 05월 09일 17시 26분
황보백령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예전의 아름다움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아이가 날 불렀어!"
그녀는 마치 넋나간 사람 마냥 소리쳤다.
궁수월은 가슴이 미어진다.
영영은 황보백령의 품안에서 사흘 전에 숨을 거두었다. 무산파파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끝내 그 아이도 떠나간 것이다.
"내가 죽였어."
황보백령은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충직한 궁수월을 서럽게 했다.
"고정하십시오."
"요요 같은 아이를 내 손으로 죽인거야."
"공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황보백령의 눈빛이 갑자기 사납게 변했다.
"변명은 하지마. 분명히 내가 출수했어. 그 아이의 칠공에서 흐르는 피를 총관도 목격했잖아. 내 인형 요요도 죽었어."
궁수월은 그녀가 당한 심적 충격을 이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영영은 일심부의 모용추에게 지시를 받고 분명히 공주님을 해치려 했었습니다."
"요사스러운 것!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 날 우롱하지마라."
"사실이옵니다. 공주님은 잘못이 없습니다."
"호호호… 그런 말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지나가는 개도 코방귀를 뀔거야."
"모용추의 음모이옵니다."
황보백령의 시선이 냉랭하게 바뀌었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오?"
창밖에 그림자 하나가 걸렸다.
"일심부는 흉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문파로 분류하고 있소. 그들은 전혀 중원에 노출된 바가 없었으나 본 사주의 짐작으로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들로 보여지오."
혈마사의 주인 묵기량이었다.
묵기량과 궁수월은 일심부와 충돌을 벌이다가 황보백령을 찾아 합류하여 이곳 야산의 비어있는 모옥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영영이 숨을 거둔 것도 바로 이 집이었다.
황보백령이 문득 중얼거렸다.
"모용추에게 그런 재주가 있다니 실로 놀랍군. 난 그녀가 또 어떤 재주를 부리는지 반드시 시험해 볼 작정이야."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도 그대를 시험해 보기 위해 방문했는데… 우린 공평하게 서로 관심이 많았던거 같군."
서풍(西風)이 차갑게 훑어 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