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운명(運命)의 장(章) (15)

기사입력 1996년 04월 06일 16시 24분

전신에 붉은 복장을 하고 있는 인물. 혈마사의 자객이었다.

그는 급히 보고를 올렸다.

"낙양표국은 지금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소이다."

중인들은 한결같이 흠칫 놀란다.

특히 황보백령의 놀라움은 유독 크게 느껴진다.

"그럴리가?"

"총표두 양문우를 비롯한 황금사원 소속의 비밀 표사들도 이미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 보고의 충격은 상당했다.

황보백령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해갔다. 궁수월과 무산파파도 아연한 표정으로 일신이 경련됐다. 이윽고 황보백령의 눈동자는 분노로 인해 새파랗게 타올랐다.

"아무래도 동태가 심상치 않아서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 그들은 중무련이오?" 황망히 대답하는 혈마사의 자객.

"그건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누구냐?"

혈마사주가 살기를 뿜어내며 나선다. 보고하는 자객이 더욱 고개를 조아린다.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무리들이었습니다."

황보백령의 입가에 냉기가 흘렀다.

"누구든 상관없소. 그들을 모조리 처지할 수 있겠소?"

그녀의 시선은 묵기량을 향했다. 묵기량은 약간 신중해졌다.

"불가능한건 아니오."

"그렇다면 표국을 완전히 피로 씻어 버리시오!"

"하지만...."

"하지만 뭐요?"

황보백령의 싸늘한 추궁에도 불구하고 묵기량은 침착했다.

"표국의 그들은 소저의 도착을 기다리며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을테니 그리 간단한 노릇이 아니오. 더구나 잠복하고 있는 자들의 내력을 모르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요. 감히 황금사원을 적대시 한다는 건 또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요." 놀랍게도 묵기량의 판단은 냉철하면서도 치밀했다.

그러나 황보백령의 분노는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듯했다.

"당신은 그들을 남김없이 처치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소?"

묵기량은 여전히 냉정했다.

"가능하지만 나의 수하들도 막대한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오."

"어느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오?"

"아마도 삼분의 이는 희생될 것이오. 그리고 나 역시 목숨을 보장할 수 없소. 왜냐하면 그들은 황금사원의 주인을 노리는 자들이기 때문이오." 황보백령은 할말을 잃고 멍해졌다.

묵기량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응전할 태세를 갖추고 잠복해 있는 적을 섬멸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