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능 진단서
기사입력 1996년 03월 21일 17시 37분
**불안감-강박감 지나치면 능력발휘 못해 **성적 쾌감 앞지르는 참사랑을 만들어야
성수대교의 가운데 다리가 힘없이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의 가운데 토막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이유는 `빨리빨리병'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것도 전염병인지 은밀한 부부생활에까지 옮겨온 것을 진료실에 앉아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남성의 상징이 고장나거나 새 생명의 씨앗을 만드는 고환의 생산라인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을 다루다보면 좀 특이한 진단서를 발급해야 하는 수가 있다. 이름하여 `성기능 진단서'란 것이다. 심각한 고민끝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 버리지 못하며 이제 막 총각 티를 벗어난 듯한 남성이 자신의 성기능이 정상이라는 증명서를 발급해달라는 요청을 하며 진료실의 문을 두드린다. 자신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왜 아내 앞에만 가면 힘없이 주저앉고 마는지 알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빨리빨리 병'에 전염된 여인은 남편이 밤의 예식을 치르지 못하는 불능환자라고 단정지으며 주위 사람에게 알리는 어설픈 행동을 한다. 다소곳이 기다릴줄 모르고 처음부터 기막힌 기술로 훌륭한 연출을 해서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는 성급한 기대가 잘 나갈 수 있는 남성을 가로막은 것이다. 급기야 비뇨기과에서 보증하는 증명서를 받아오지 않으면 결혼은 무효라는 중대선언의 메아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풀죽은 남성이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이 환자아닌 환자는 인감증명서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정확한 성기능 증명서가 간절히 필요할테니 초조하게 기다린다.
각종 검사를 시행하여 보면 대부분의 이런 남성들은 성에 대한 욕구, 행위를 위해 시들지 않는 탄탄한 추진력, 종족보존을 위한 파종의 능력, 그리고 온몸으로 느끼는 감성적 인식 등의 핵심적인 4대 성기능은 정상이다. 다만 심리적인 불안감과 잘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지나치게 사로 잡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감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적절한 심리치료에 반응이 좋으며, 성기능 증명서 발급에 흠이 없다. 그러니 부부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보증수표를 발행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의사는 가정파탄으로부터 구출해내는 밧줄 역할을 한 것이다. 남편도 아내도, 사랑을 제쳐버린 성행위보다 성적인 쾌감을 앞지르는 참 사랑으로 가득한 돌담집을 만들어야 한다. 와르르 담을 허물어뜨리고마는 결정적 실책은 없어야 한다. 임일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