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석 > 소잃고 외양간도 안고쳐
기사입력 1996년 03월 21일 16시 16분
부드러운 것(縮)으로 강하고 딱딱한 것을 제압한다는 사랑의 무도(武道)가 스물두살 어린 선수의 올림픽 메달꿈을 볼모로 그의 천금같은 생명을 앗아갔다.
생명은 그렇게 호락하지 않다.
살인적인 감량의 고통속에 정세훈(22)은 몇차례나 "이러다 죽을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빠졌을 것이다.
어린 그가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죽음에 이르는 감량전쟁을 계속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도는 오는 에서 다시한번 `장하다 대한건아'를 외치고 싶은 한국스포츠 최대의 메달박스다.
국민들의 환호가 높아갈수록 일선 지도자들은 눈두덩처럼 불어나는 과중한 심적부담에 시달린다.
선수들의 과욕을 방조 또는 묵인, 어쩌면 암묵적인 독려까지 자행한다는 유도계의 지도풍토를 우리가 팔을 걷고 비난할수 있을까.
그들을 무감각의 절벽으로 몰아세운 얼굴속에 `세계스포츠 빅7'이라는 태극마크의 일그러진 위용이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였던 故 송성일 선수의 위암 사망과 남자배구 대표였던 故 김병선 선수의 심장마비사 등 건강했던 선수들의 돌연한 사망사고는 최근 1년여사이에 벌써 세번째.
앞선 사고때마다 대표팀을 비롯한 각 팀의 선수관리의 허점이 번번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지만 결국 이번 사고로 그동안 별반 달라진게 없음이 증명됐다.
`죽음'은 어떤 변명도 필요치 않은 단 하나의 주제다.
우리는 건강한 대한의 아들-딸들을 내맡겨 놓은 선수촌의 대책없음과 체급경기의 폐해를 질타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스물두살의 젊은 영혼을 다시 우리앞에 데려다주지는 못한다.
이미 소는 잃고난 다음이다.
그러나 여하튼 외양간을 고치자.
아직도 우리에겐 많은 소가 남아있으니까.
